한국인 3명 분단국대표 참여
“마음속 장벽도 무너뜨리자” 젊은 세대들 희망의 목소리
베를린 장벽 붕괴 20주년이 되는 9일(현지 시간), 아침부터 비가 부슬부슬 오는데도 브란덴부르크 문 주변은 축제 열기에 휩싸였다. 쇠네펠트 공항에서 택시를 타고 운터 덴 린덴에 내려 브란덴부르크 문으로 향했으나 동쪽(옛 동독지역)에서 서쪽(옛 서독지역)으로 넘어갈 수가 없었다. 이곳은 바로 옛 베를린 장벽이 서 있던 곳. 형형색색의 그림이 그려진 1000개의 스티로폼 도미노 패널이 다시 장벽을 이루고 기자의 갈 길을 막아섰다.
물론 이 모형 장벽은 북쪽으로는 독일 국회의사당, 남쪽으로는 포츠담 광장에서 끝난다. 그러나 평소 같으면 한 걸음이면 건널 수 있는 곳을 몇백 m씩 돌아가야 하니 20년 전 장벽에 가로막힌 독일인들의 신세가 가슴에 와 닿았다. 옛 동독인들은 한 걸음이면 건널 수 있는 이곳을 헝가리로, 체코로, 폴란드로 수백 수천 km씩 돌고 돌아 탈출을 시도했다. 이날 포츠담 광장에서 국회의사당까지 1.5km에 걸친 스티로폼 모형 장벽이 무너지는 데는 2분이 조금 넘게 걸릴 뿐이었지만 실제 ‘철의 장벽(Iron Curtain)’이 무너지는 데는 약 40년이 걸렸다.
동서독 간의 물리적 장벽은 무너졌지만 아직도 심리적 장벽은 무너지지 않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 그러나 20년이 지난 지금, ‘통일둥이’들이 20세를 맞는 지금 그들은 심리적 장벽도 젊은 세대들로부터 사라질 수 있다는 희망을 갖고 있다.
슈테파니라고만 밝힌 여대생(22)은 두 살 때 베를린 장벽 붕괴를 맞았다. 그에게 동독 시절의 추억은 없다. 베를린 장벽 붕괴 후에는 동베를린에서 서베를린으로 옮겨와 살았고 서독의 또래들과 같이 성장했다. 그에게 동서독 출신의 차이를 느끼느냐고 물었더니 “많은 친구가 서베를린 출신이지만 말로 설명할 수 있을 만큼 별로 큰 차이를 느끼지 못하겠다”고 말했다.
서독 출신인 슈테판 로케 씨(27)는 “베를린 장벽이 무너질 때 일곱 살이었는데 특별한 기억은 없다”며 “단지 아버지가 독일 축구국가대표팀이 훨씬 강해질 것이라고 말한 것이 생각난다”고 말했다.
‘자유의 축제’라고 불린 이날 행사의 하이라이트는 높이 2.3m의 도미노 패널 1000개를 넘어뜨리는 행사. 첫 도미노를 밀어뜨린 영광의 주인공은 자유노조 운동을 이끌며 동유럽 공산주의 붕괴의 물꼬를 튼 레흐 바웬사 전 폴란드 대통령이었다.
독일인은 이날 행사에서 냉전으로 인한 최후의 분단국가 한국에 깊은 관심을 보였다. 바웬사 전 폴란드 대통령이 무너뜨린 도미노 패널은 브란덴부르크 문 앞에 전시된 안 씨의 패널 앞에서 한 번 멈춰 섰는데 그 자리에서 독일 공영방송 ZDF가 안 씨를 인터뷰했다. 안 씨가 선정된 것은 물론 그가 분단국가인 한국의 예술가라는 이유에서다. 안 씨는 “통독 전에 슈투트가르트에서 유학하면서 서베를린에 와본 적이 있다”며 “그때는 장벽 앞에서 세계의 끝에 와 있다는 서늘한 느낌을 가졌는데 지금 이런 뜨거운 축제분위기에서 이곳을 찾으니 감회가 특별하다”고 말했다.
이번 베를린 장벽 붕괴 축제는 유럽연합(EU)의 정치적 통합을 강화한 리스본조약 발효를 눈앞에 두고 EU의 쌍두마차인 독일과 프랑스가 각별한 우의를 과시하며 열렸다.
브란덴부르크 문 앞에는 ‘프랑스가 함께 축하한다(Frankreich feiert mit)’는 커다란 플래카드가 내걸려 눈길을 끌었다. 또 프랑스 파리의 콩코드 광장에서는 베를린 ‘자유의 축제’와 같은 시간 축하공연이 펼쳐졌다. 유럽의 저명한 바이올리니스트 27명이 출연해 프랑수아 피용 프랑스 총리가 참석한 가운데 축하 연주를 하며 통독의 기쁨을 같이 나눴다.
베를린=송평인 특파원 pis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