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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월풀이 LG에 두손 든 까닭은

입력 | 2009-11-10 03:00:00


LG전자 특허센터
냉장고 소송 승소하기까지

작년 1월 피소…15억달러 날릴 위기
로펌수준 대응팀 믿고 밀어붙이기 선택
증거 찾아 해외공장 출장 21개월 사투
美무역위서 “침해없다” 판결 받아내


미국 월풀과의 특허 침해 소송에서 LG전자를 승리로 이끈 주역들이 서울 서초구 우면동 LG전자 연구개발(R&D) 캠퍼스에서 파이팅을 하고 있다. 왼쪽부터 이정환 특허센터장(부사장), 고충곤 전문위원(상무), 옥주호 수석연구원, 권기동 책임연구원, 정강재 대리, 권영철 책임연구원. 사진 제공 LG전자

지난해 1월 LG전자 미국 뉴저지법인에 두툼한 우편물이 날아들었다. 발신처는 세계 1위 가전업체인 월풀이었다. 우편물을 뜯어본 직원은 화들짝 놀랐다. LG전자가 월풀의 특허권을 침해했으니, 미국 국제무역위원회(ITC)에 제소했다는 내용이었기 때문이었다. 제소 건수는 5건이나 됐고, 소송 문건은 100쪽에 달했다. 이 직원은 곧장 서울 본사에 이를 알렸다.

고충곤 LG전자 특허센터 전문위원(상무)은 한숨을 내쉬었다. 과거 20여 년간 미국에서 변호사, 변리사로 활동하면서 국내 유수의 기업을 대리했지만 ITC에 제소된 소송에서 이긴 적은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LG전자 같은 수출업자들 사이에서 ITC는 ‘저승사자’로 통했다. ITC는 ‘국제’란 표현이 들어간 이름과 달리 미국 정부기관으로 보호무역주의를 폈다. 여기서 특허 침해로 판명되면 해당 모델의 대미 수출이 전면 금지된다. 이 때문에 일단 소송을 당하면 중간에 합의금 등을 내고 ‘항복 선언’을 하는 사례가 허다했다. 만약 LG전자가 소송에서 진다면 15억 달러(약 1조7000억 원·상품주기인 5년간 수출액)를 날려야 하는 상황이었다.

 

그로부터 20일 뒤 LG전자 특허센터는 월풀의 견제에 ‘정면대응’하기로 결정했다. 고충곤 전문위원은 “치밀하게 대응을 하면 승산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더군다나 월풀의 특허공격은 LG전자에 대한 견제 성격이 강했다. 당시 월풀은 미국 냉장고 시장에서 1위였지만 프리미엄 냉장고(3도어 냉장고) 시장에서는 LG전자(14.4%)에 1위를 내준 상황이었다. 월풀의 프리미엄 냉장고 시장 점유율은 3.4%에 그쳐 자존심을 구기고 있었던 것.

이때부터 특허센터의 ‘강행군’이 시작됐다. 특허 소송은 ‘활자와의 싸움’이었다. 직원들은 소송에서 나올 항목을 예상문제로 뽑아 자료를 찾고 꼼꼼하게 공부했다.

옥주호 수석연구원과 권영철 책임연구원은 시뻘건 ‘토끼 눈’으로 근무하는 게 다반사였다. 월풀의 ‘LG전자의 냉장고 서랍이 월풀 기술을 베꼈다’는 주장에 대한 반박 자료를 찾아야 했기 때문. 옥 연구원은 밤을 새워가며 수만 건의 자료를 뒤진 끝에 월풀이 해당 특허를 출원하기 전 이를 이용한 제품을 이미 출시한 사실을 찾아냈다. ITC 규정상 특허 출원 전에 해당 제품이 이미 상품 안내책자, 잡지 등에 소개됐을 경우에는 특허가 무효화된다. 정강재 대리는 여기에다 월풀이 주장하는 특허를 LG전자도 기존에 보유하고 있었다는 증거자료를 확보하기 위해 이 기술을 쓰고 있던 LG전자의 멕시코 공장으로 날아갔다.

그 결과 월풀은 5건 중 4건은 자진 취하 또는 합의 취하했다. 올해 7월 ITC는 이례적으로 재심(再審) 명령을 내렸다. 한바탕 싸워 이겼는데 다시 싸우라는 것이었다. 이는 ITC 역사상 극히 드문 경우로 월풀의 정치적인 공세와 경기 침체에 따른 미국 내 보호무역주의 확산 등의 영향이라고 현지 언론은 분석했다. 그러나 LG전자는 지난달 재심 판결에서도 이겨서 특허로 시비를 건 월풀을 끝내 물리쳤다.

LG전자는 이를 계기로 앞으로 특허전략을 수세에서 공격으로 바꾸기로 했다. LG전자는 지난달 미국 뉴저지 지방법원에 월풀을 상대로 특허 침해 소송 및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했다. 이와 함께 GE와 일부 특허를 공유하기로 계약을 하고 ‘연합군’을 형성했다. 이정환 특허센터장(부사장)은 “특허소송은 기술력과 브랜드에 대한 정당한 권리를 주장하기 위한 것”이라며 “특허 소송에 적극 대응해 ‘전자 한국’의 위상을 높일 것”이라고 말했다.

 


김유영 기자 abc@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