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빈슨에 따르면 아동과 청소년기는 봄, 성인기는 여름, 중년기는 가을, 그리고 노년기는 겨울을 나타낸다. 또한 계절이 바뀔 때마다 환절기가 있듯이 인생에도 전환기가 있다. 성인기에서 중년기, 노년기로 전환되는 시기에 우리는 마치 환절기 감기에 걸린 것 같은, 적응을 위한 일종의 고통스러운 통과의례를 거치게 된다. 바로 ‘중년기 위기(mid-life crisis)’다.
환절기 감기같은 중년의 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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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중년기 위기가 정확히 몇 세에 오는지, 얼마나 심각한지 규정하는 것은 어렵다. 개인차가 크기 때문이다. 특히 지구상 모든 척추동물에게만 존재하는 노쇠현상에 대해 연구한 생물학자 조지 파커 비더의 설명은 흥미롭다. 진화론적 관점에서 보면 원시사회에선 중년기란 존재하지 않았다. 원시사회의 인간은 18세 전후로 신체 성장이 멈추고 자식을 두게 된다. 이후 자식을 양육하기 위해 수렵이나 채집 활동에 집중한다. 그러다 30세 후반, 40세경이 되면 자식이 성장해 스스로 삶을 꾸려가게 되면서 동시에 부모의 존재가치는 없어지게 된다. 바로 이 시기에 인간은 생물학적으로 그리고 심리적으로 효율성이 떨어지면서 결국 사망에 이르는 것이다. 따라서 당시엔 현대인과 같은 중년기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았다. 이 나이를 넘어서까지 개인의 인생을 지속해가는 것에 가치를 두게 된 것은 언어가 생성되고, 좀 더 복잡한 문화형태가 출현한, 인류 역사상 비교적 최근의 일이다. 사실 수명이 너무나 연장된 현대사회에서 40세 전후가 중년기라고 정확히 말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그 오래전 원시시대 때 죽음에 직면했던 경험이 무의식적으로 축적되어 그 나이가 되면, 즉 중년기가 되면 무의식적 불안으로 인한 흔들림과 방황이 생긴다는 것이다.
한겨울 준비하는 ‘숯’이 돼야
모든 사람은 중년기를 거친다. 그 기간을 어떻게 보낼 것인지는 순전히 개인의 몫이다. 지나간 젊음을 아쉬워하며 방황할 것인지, 새로운 삶의 전환기로 받아들일 것인지는 개인의 선택에 달려 있다. 중요한 것은 균형 맞추기이다. 중년기는 한여름의 뜨거움과 겨울의 냉랭함 사이의 균형, 즉 젊음과 늙음의 균형을 맞추는 적응의 시기이다. 순식간에 활활 타올라서 금방 재만 남아버리는 불이 아니라 겨울 내내 따뜻하게 해 줄, 쉽게 꺼지지 않는 ‘숯’이어야 한다. 공자는 마흔을 어떤 유혹에도 흔들림이 없다는 불혹(不惑), 쉰 살을 천명을 알게 된다는 지천명(知天命)이라 하였다. 젊음과 늙어감의 혼란 속에서도 미혹되지 않고 겨울을 준비하는 더욱 열정적인 완숙하고 절제된 젊음. 이 가을, 중년의 새로운 젊음을 찾을 때다.
곽금주 객원논설위원·서울대 교수·심리학 kjkwak@s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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