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히려 이번 이 국장의 방미를 평가하는 워싱턴의 분위기는 “오바마 행정부가 견지하고 있는 냉정한 대북 인식을 잘 보여준 계기가 됐다”는 지적이 많다. 6자회담이 장기간 교착상태에 빠졌던 2005년 6월 이 국장의 방미와 비교해 봐도 그렇다. 당시 미국에서는 크리스토퍼 힐 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담당 차관보 겸 6자회담 수석대표, 조지프 디트라니 대북협상대사, 데이비드 스트라우브 국무부 한국과장이 앞 다퉈 이 국장을 만났다. 1993년 미주국 과장이 된 뒤 16년째 미국만 상대했고 6자회담 차석대표로 예우 받아온 이 국장으로서는 어쩌면 홀대를 받았다고 생각할 수도 있을 법하다.
왜일까. 쉽게 이야기하면 오바마 대통령의 눈에 북한이 들어오지 않는다는 표현이 맞을 것 같다. 국내적으로는 내년 중간선거에 심대한 영향을 미칠 보건의료개혁의 연내 마무리 작업이 최우선 순위의 일이고 외교안보 분야에서는 아프가니스탄, 이라크, 파키스탄, 이란 문제가 오바마 대통령의 새벽잠을 방해하고 있다. 특히 아프간에서는 10월 56명의 미군이 전사하면서 8년 전쟁 기간 중 최다 전사자를 낸 달로 기록될 정도니 6자회담 재개 이전에 단둘이 대화 테이블에 앉아달라는 북한의 ‘칭얼거림’이 잘 들릴 리 없다.
외교소식통들은 오바마 행정부 내에 북한전문가가 보이지 않는다고 지적하는 사람들도 있다. 한국계인 성 김 특사 정도가 북한과의 협상에 전문성을 갖고 있지만 조지 W 부시 행정부 시절 당시 힐 차관보-캐슬린 스티븐스 특별보좌관-성 김 한국과장-유리 김 북한팀장으로 이어지는 정책결정라인의 전문성에는 미치지 못한다는 것. 대북정책에 영향력이 큰 커트 캠벨 국무부 동아태담당 차관보와 제프리 베이더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아시아담당 선임보좌관의 주특기도 한반도가 아닌 중국이다.
북한 내에서 미국을 가장 잘 아는 사람 중 한 명인 이 국장은 평양에 돌아가면 현장에서 보고 느낀 것을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강석주 외무성 제1부상, 김계관 6자회담 북한 수석대표 등에게 있는 그대로 전달해야 할 것이다. 누누이 미국이 강조하고 있지만 대화를 위한 대화는 하지 않을 것이며 단지 대화로 나온다고 해서 과거처럼 북한의 핵실험이나 미사일 발사, 핵확산 등에 대한 제재를 풀거나 완화하지 않겠다는 뜻도 분명하다. 또한 핵무기를 가진 북한과의 관계정상화는 없다는 것은 흔들릴 수 없는 원칙이다. 인정하고 싶지 않겠지만 시간은 북한편이 아니다. 그리고 기회도 항상 오는 것은 아니다.
하태원 워싱턴 특파원 triplet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