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대통령이 밝힌 개헌 - 일왕 초청 가능성과 득실은▼
16일 정치권과 외교가의 최대 화제는 이명박 대통령이 전날 연합뉴스 및 일본 교도통신과의 인터뷰에서 제시한 개헌과 일왕 방한 문제였다. 이 대통령은 “개헌 문제는 너무 크게 영토 문제에서부터 이념 문제까지 들어가면 헌법 개정은 실제 이뤄지기 힘들 것으로 본다”며 권력구조에 국한한 ‘소폭 개헌론’의 불을 지폈지만 당장 개헌 시기와 폭, 권력구조 개편 방향을 놓고 각 정파의 견해가 중구난방으로 분출하고 있다. 한일강제병합 100년이 되는 내년 일왕의 방한 역시 민감한 이슈다. 개헌론의 향후 전망, 일왕 방한의 득과 실을 짚어본다.
■ ‘소폭 개헌론’ 정치권 주판알
○ 개헌논의 지금이 적기?
친이 “당장 특위구성”… 친박은 신중
민주 “이슈 뺏길라… 지방선거 후에”
○ 4년중임? 분권형 대통령?
차기 노리는 친박, 권력분산 떨떠름
분권론자 昌은 “이왕이면 광폭개헌”
○ 2012년 대선-총선 동시에 치르려면?
李대통령 임기 9개월 ‘반납’해야
의원 임기 늘리는건 현실성 희박
《이명박 대통령이 “너무 광폭적으로 헌법에 손을 댄다면 이뤄질 수 없다. 통치권력, 권력구조에 대해 제한된 것을 갖고 하면 검토의 대상이 될 수 있다”며 개헌 가이드라인을 제시했다. 이른바 ‘제한 개헌론’ 혹은 ‘소폭 개헌론’이다.
하지만 개헌 시기의 적절성과 폭, 권력구조 등을 놓고 여야는 물론이고 각 대선주자 등의 득실계산이 제각각이어서 최종 합의를 이루기는 쉽지 않다는 관측이 벌써부터 나온다. 개헌 논의는 판도라의 상자이자 블랙홀이 될 수 있는 이슈여서 정치권도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
○ 개헌 시기 논란
당장 여당 내에선 지금이 개헌 논의의 적기(適期)인지를 놓고 친이(친이명박)계와 친박(친박근혜)계가 신경전을 펼쳤다. 안상수 원내대표는 16일 최고위원·중진 연석회의에서 “개헌은 시대적 요구로 국민의 70∼80%가 개헌에 찬성하고 있고, 권력구조 문제에서도 분산이 시대적 화두”라며 “조속한 시일 안에 당에 개헌특위를 구성하겠다”고 밝혔다. 그러자 친박계가 즉각 견제에 나섰다. 김영선 의원은 “당장 개헌에 대해 논의하면 분열 요소가 있다”며 “정치적 게임을 벌인다는 비판을 받을 소지가 있는 만큼 오래 연구하고 뜸을 들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김무성 의원도 “원내대표가 마치 당론이 결정된 듯 의총에 부치겠다고 하는데 신중하고 전략적으로 접근해야 한다”고 거들었다.
이에 친이계 공성진 최고위원은 “노무현 전 대통령의 원 포인트 개헌이 실패한 것은 임기 말에 나와 동력을 받지 못했기 때문”이라며 “지금 시작하면 늦어도 내년 말까지는 개헌이 가능하다”고 재반박하는 등 논란이 벌어졌다.
민주당은 이 대통령의 개헌 발언에 대해 “진정성이 없다”며 냉소적 반응을 보였다. 개별 의원들 사이에선 개헌 논의의 필요성에는 공감하는 분위기도 없지 않지만 개헌 정국이 모든 이슈를 빨아들일 수 있고 유력한 대선주자 부재 등 현재의 역학구도 아래에선 개헌 논의의 주도권을 쥘 수도 없기 때문이다. 정세균 대표가 이날 최고위원회의에서 “개헌과 선거구제에 대한 단일안이 없는 상황에서 대통령이 한 달 간격으로 이런 얘기를 하는 것은 진정성이 없고 국면 전환을 위한 정략적인 것으로 판단한다”면서 “국민적 공감대가 미흡하기 때문에 본격적인 개헌 논의는 지방선거 이후 이뤄져야 온당하다는 게 민주당의 태도”라고 선을 그은 것도 그런 맥락으로 분석된다.
○ 권력 분산 논란
이 대통령의 개헌 발언은 “할 수 있는 것부터 하자”는 ‘실용적 인식’에 근거한 원론적 언급이라는 게 청와대의 설명이다. 그러나 친이계와 친박계가 개헌 논의 시기부터 논란을 벌이는 데는 더 근본적인 이유가 있다. 차기 대권에 대한 전망이 다르기 때문이다. 유력 주자가 없는 친이계는 아무래도 ‘권력 분산’ 쪽에 관심이 많다. 최근 친이계인 진수희 의원이 소장으로 있는 여의도연구소 측이 ‘4년 중임제’보다는 ‘분권형 대통령제’ 분위기를 띄우는 것도 같은 맥락으로 읽힌다.
차기 권력구도의 이해 당사자인 박 전 대표 측은 친이계와 달리 4년 중임제를 선호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유력한 차기 대선 주자로 거론되는 상황에서 권력구조 개편 논의의 방향이 대통령의 권한을 분산시키는 쪽에 초점을 맞추는 것을 반기지 않는다는 해석이 나온다.
이런 상황을 감안할 때 내각제 주장은 끼어들 틈도 없다. 이 대통령은 현행 5년 단임제는 비생산적 권력구조라는 인식이 강한 것으로 알려졌다. 국정 운영의 효율성과 권력 분산을 둘 다 실현할 묘책을 정치권이 합의해오면 반대하지 않겠다는 생각인 것으로 보인다.
자유선진당은 ‘광폭 개헌’을 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회창 총재는 이날 당5역회의에서 “개헌을 하려면 광폭으로 해야 한다. 소폭으로 하려면 차라리 건드리지 않고 놔두는 것이 낫다”며 “헌법 개정 절차가 매우 까다롭기 때문에 국민투표 등 국가적 대사를 한번 치러야 하는데 원 포인트 개헌이 합당한 것이냐”고 반문했다. 이 총재는 평소 “중앙집권제형 국가구조를 획기적인 연방 수준의 분권형 국가로 바꾸는 국가 대개조를 해야 한다”며 강소국 연방제로의 개헌을 주장해 왔다.
○ 대통령 임기 단축?
권력구조를 어떻게 바꿀 것인지와 더불어 중요한 변수는 선거 주기의 문제다. 이 대통령은 8·15 경축사에서 “대선, 총선, 지방선거, 재·보궐선거 등 잦은 선거가 국력 낭비를 초래하므로 이를 합리적으로 조정하자는 것으로, 예를 들어 1년에 두 번 치르는 재·보선을 한 번으로 조정해도 국가적으로 큰 도움이 된다”며 선거 횟수 감축을 언급한 바 있다. 청와대는 대선과 총선 시기를 일치시키는 문제를 제기하진 않았지만 권력구조 개편은 선거 주기 문제와 나눠 생각할 수 없다. 만약 4년 중임제 개헌을 한다고 할 때 2012년 대선과 총선 시기를 일치시키려면 이 대통령의 임기를 9개월가량 단축해야 한다. 현 집권 세력으로선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은 문제다. 국회의원 임기를 늘리는 방안은 거의 현실성이 없다. 이처럼 사정이 복잡하기 때문에 개헌 문제는 논의만 무성하다 흐지부지될 수도 있다.
정용관 기자 yongari@donga.com
박정훈 기자 sunshad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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