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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눈/주성하]모범근로자에 금강산 개방한 ‘北실용주의’

입력 | 2009-09-08 02:56:00


북한이 1년 넘게 남측 관광객들의 발길이 끊긴 금강산을 올 들어 북한 모범근로자들의 휴양지로 개방해 왔다고 한 대북 소식통이 며칠 전 기자에게 전해 왔다.

그러나 지난해 12월 1일부터 실시했던 동해선 육로 통행 제한조치를 이달 1일부터 풀면서 금강산에서 휴가 중이던 근로자들을 2일까지 전부 철수시켰다는 것이다. 20일짜리 관광권을 받고 금강산에서 즐기던 북한 근로자들은 기한도 채우지 못하고 영문도 모른 채 모두 집으로 돌아갔다고 한다. 금강산에 남측 관광객이 들어온 1998년 이후 북한에서 금강산 관광은 극소수 권력자에게만 허용되는 특혜였다. 일반 주민이 금강산을 구경한 것은 올해가 처음이다. 북한은 단위별로 노력혁신자를 추천받아 20일짜리 관광권을 나눠줬다. 주로 젊은 사람들이 선발됐으며 휴양객 숙식비는 북한 당국이 모두 부담했다고 한다.

이런 조건에도 금강산 관광권을 받은 모범노동자 가운데 별로 내켜하지 않은 사람도 적지 않았다는 뒷얘기가 들린다. 가족의 생계를 책임져야 하는 젊은 사람이 20일간 집을 비워 장사를 할 수 없는 데다 무료인 숙식비 외에도 10만(남한 돈 약 3만2000원)∼20만 원의 회식비 등을 스스로 부담해야 하기 때문이다. 북한 돈 10만 원은 주식인 옥수수를 100kg 남짓 살 수 있는 큰돈이다. ‘금강산 구경도 식후경(食後景)’이라는 말이 이 경우를 두고 하는 말이 아닐까.

일부 휴양객은 “유리바닥으로 바닷물이 보이는 호텔에서 식사했다”고 자랑하고 다닌다고 한다. 현대그룹이 처음으로 지은 선상호텔인 해금강호텔을 지칭하는 듯하다. 북한이 남측 자본 흔적이 곳곳에 역력한 금강산을 그냥 비워두기보다는 일반 근로자들의 휴식공간으로 제공한 것은 긍정적인 일이다. 10년 전이었다면 아마 남한에 대한 환상이 생길까봐 금강산을 그냥 비워뒀을 것이 분명하다.

이제 북한 휴양객까지 다 떠나간 천하명승 금강산은 다시 적막강산이 됐다. 북한이 갑자기 휴양객들을 철수시킨 것은 금강산 관광 재개에 대한 의지가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하지만 북한은 지난해 한국 관광객 피살 사건에 대해 공식사과도 하지 않고 제도적인 재발방지 대책도 내놓지 않고 있다. 오히려 6일 새벽 예고 없이 황강댐을 열어놓아 6명의 목숨을 앗아갔다. 그러고도 북한은 사과조차 하지 않고 있다. 이런 상황이 되풀이되는 상황에서 누가 북한 관광길에 나서고 싶어 할까. 북한의 공식 사과와 신변보장 약속 없이는 금강산 관광이 재개돼서는 안 된다.

주성하 국제부 zsh7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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