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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눈/이기홍]케네디와 해치 ‘상극에서 상생으로’

입력 | 2009-09-02 02:58:00


“어둠을 뚫고/우리는 길을 찾을 수 있다네/ 비와 안개를 뚫고/ 우리는 맑은 날을 찾을 수 있다네/ 절망의 암초에도 좌초하지 않으리/ 우리는 집으로 항해하네/ 집으로 집으로…”

라디오에서 낯선 노래가 흘러나온다. 조금 어설프지만 굵은 남자 목소리가 심금을 울린다. ‘Headed home(집으로 향해가네)’이란 가사가 후렴처럼 반복된다. 마침 진행자가 해설해준다. “이 노래를 지은 오린 해치 상원의원에 따르면 Home은 의사당을 상징한다. 테드(고 에드워드 케네디 의원의 애칭)가 병마를 이기고 의사당으로 귀환하길 염원한 것이다.”

‘케네디와 해치.’ 워싱턴 의회 주변에선 TV 시리즈 ‘스타스키와 허치’처럼 ‘∼와 ∼’로 연결되는 게 너무도 자연스러운 한 쌍의 이름이다. 두 정치인이 30여 년간 수많은 법안을 함께 만들어오면서 자연스레 생긴 표현이다.

외형상 ‘케네디 & 해치’는 ‘톰 & 제리’처럼 상극이다. 모르몬교 본산인 유타 주 출신인 해치 의원(75)은 보수주의를 대변하는 6선 의원이다. 2006년엔 “테러리스트들이 민주당의 재집권을 기다리고 있다”는 연설로 진보진영을 분노케 했다. 반면 지난주 타계한 케네디 의원은 의회 내 리버럴의 상징이었다. 생활 태도도 판이했다. 해치 의원은 절대 금주(禁酒)자다. 케네디 의원은 1992년 재혼 전까지 여성 관련 스캔들을 일으키며 ‘바람처럼’ 살아왔다.

1977년 워싱턴에 도착한 초선의 해치 의원은 “나는 케네디와 싸우기 위해 왔다”고 공언했다. 하지만 상임위 일을 함께하면서 정책적 우정이 싹텄다. 머리를 맞댄 채 이념적 편차를 넘어 보편적 가치를 구현하는 이슈들, 예를 들어 아동복지, 자원봉사 등의 분야에서 수많은 법안을 만들어 냈다.

케네디 의원은 생전에 “우리의 우정은 의원이란 자리가 경세가(經世家·statesman)임을 자각할 때 더욱 꽃피었다”며 “좌우 양쪽에서 마뜩잖게 보는 눈이 많았지만 의견 차를 좁히며 만든 것일수록 결과물은 더 강했다”고 말하곤 했다. 초당적 정책협업은 깊은 우정으로 이어졌다.

케네디 의원 타계 소식에 비통해한 해치 의원은 친구의 치유를 기원하며 만든 노래를 뒤늦게 공개하며 이렇게 말했다.

“테드는 리버럴이었고, 사립학교를 나왔다. 나는 노동자 가정에서 태어나 공립학교를 다녔다. 하지만 우리는 함께 일할 수 있었다. 우리가 서로 모든 의견에 동의해야 할 필요는 없다. 하지만 공익을 위해 헌신한 삶에 대한 존경과 찬탄은 누구나 같은 마음일 것이다.”

이기홍 워싱턴특파원 sechep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