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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일/패션]당신의 옷은 착합니까?

입력 | 2009-08-28 02:59:00


■ 친환경… 재활용… ‘윤리적 패션’ 첫 전시

‘착하게 입자’란 주제로 경기 안산시 경기도미술관에서 전시가 열리고 있다.

“착하게 입는 거? 상대방을 배려하는 패션이지. 몸에 맞지 않는 과도한 옷차림은 불쾌감을 주잖아.” “착한 여자, 착한 패션, 뭐 그런 신파조로 들리는데…” “잘 입는 게 착하게 입는 건가? 요즘 유행하는 그 에지(edge) 패션처럼.” 도발적 카피에 대한 반응은 다양했다.

○ 당신이 생각하는 착한 패션은?

지난달 열린 개막식에서도 화두는 ‘착한 패션은 무엇인가’였다. 경기도미술관의 김홍희 관장을 필두로 미술가 정보원, 박상숙, 여성학자 오숙희, 무용가 홍신자, 영화평론가 유지나, 미술평론가 유진상, 팝아티스트 낸시랭, 모델 변정수 씨 등 유명 인사 20여 명이 ‘내가 생각하는 윤리적 패션’을 직접 몸으로 표현했다. 착하게 입은 모습으로 무대에 올라 자신의 의상을 설명하는 패션쇼를 펼쳤다.

이날 패션쇼에서 현대무용가 박명숙 교수는 부모님의 유품을 몸에 걸치고 무대에 섰다. “돌아가신 어머님이 남긴 액세서리를 아버님이 즐겨 쓰시던 가방과 조끼에 달아 봤어요.” 박 교수에게 착한 옷이란 추억이 담긴 옷인 듯 했다. 오숙희 씨는 노모와 20대 딸의 손을 잡고 무대에 올랐다. 오 씨가 딸을 임신했을 때 노모가 만들어줬던 임산부복 등 이들 세 모녀에게 사연이 깊은 옷들이 소개됐다.

유진상 씨는 아이스하키 선수 차림을 선보였다. “가장 자주 입고, 땀 흘릴 수 있는 옷이 좋은 옷 아닌가요?” 체중감량을 위해 아이스하키에 흠뻑 빠져 있다는 유 씨는 본인이 가장 진솔할 수 있는 차림을 착한 패션이라고 설명했다. 변정수 씨에게 착한 패션은 “건강한 몸을 위한 옷”이라고 했다. “모델이다 보니 마네킹처럼 옷에 몸을 맞춰왔어요. 그런데 착한 패션은 몸에 맞는 옷을 입는 게 아닐까요? 그리고 아이에게도 안심하고 입힐 수 있는 유기농 소재의 옷이면 건강하게 입을 수 있겠죠.”

이날 패션쇼는 ‘이제 당신이 생각하는 착한 패션은 무엇이냐‘는 질문을 남겼다.

○ 디자이너들의 사회적, 윤리적 고민의 무대

착한 패션에 대한 화두를 던진 이번 전시의 정식 명칭은 ‘패션의 윤리학-착하게 입자’. 10월 4일까지 열리는 전시는 패션이란 주제를 윤리적으로 접근해 사뭇 진지하다. 친환경 소재, 공정무역, 재활용 등 언뜻 패션과 거리가 먼 듯한 사회와 환경에 대한 이슈, 정체성에 대한 성찰을 담아낸다. 무엇보다 세계 패션 예술가들의 고민을 엿볼 수 있어 흥미롭다. 국내 작가를 포함해 6개국 19개 팀이 참여했다.

이번 전시에서 관객의 눈길을 잡아끈 작품은 프랑스 작가 아나 파울라 프라이타스의 캔 뚜껑 패션이다. 캔 뚜껑을 모아 만든 그녀의 의상과 가방 등은 ‘공정무역의 예술’로 불린다. 브라질 태생인 작가의 관심은 패션을 넘어 자신이 태어난 지역 사회의 발전에 천착하고 있다. “브라질 여성 공동체를 통해 캔 뚜껑을 모으고 세척하고 뜨개질로 뜨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어요. 중요한 건 공정무역을 실천하는 거죠. 정당한 노동 대가를 지불하고, 어린 아이의 노동력은 동원하지 않아요. 그리고 기계를 사용하지 않고 친환경적으로 수작업을 해요.” 그녀는 자신의 작품 활동이 지역 사회에 도움이 된다는 사실에 의미를 부여했다.

영국에서 온 디자이너 마크 리우는 환경 문제에 골몰한 의상을 선보였다. 그는 “의상을 제작하면서 버려지는 원단이 생각보다 많다는 데 충격을 받았다”고 했다. 일반적인 재단으로 옷을 만들 경우 버려지는 원단은 전체 15%나 된단다. “폐기되는 원단을 최소화하기 위해 고심했어요. 그러다 아프리카 전통 의상, 일본의 기모노 등에서 영감을 받았죠.” ‘아무것도 버릴 것 없는 100% 의상’을 표방하는 작가는 자투리 원단으로 장식적 요소를 만들어내고, 뜨개질을 활용하는 방법으로 단 한 조각의 원단도 버리지 않는 의상 디자인을 구현해내고 있다.

홍콩 출신 여성작가 모바나 천은 기성 패션에 반기를 들었다. 그의 작품명은 ‘보디 컨테이너’. 패션 잡지를 오려낸 종이 조각을 하나하나 엮어 머리부터 발끝까지 덮어씌운 의상이다. “패션 잡지들은 보통 이렇게 입어라, 저렇게 입으면 안 된다고 패션을 규정하잖아요. 그런 잡지를 오려내 정반대의 의상을 만들어봤어요. 그리고 그 옷을 입고 직접 돌아다녀 보기도 했어요.” 작가는 새로운 영감을 얻기 위해 직접 만든 의상을 입고 여러 나라에서 행위 예술을 선보이기도 했다고 소개했다. “의상에 대한 내 생각, 미디어의 메시지, 그리고 내 의상을 접한 사람들의 반응 등을 몸으로 느끼고 소통하는 거죠.” 종이로 만든 의상은 다소 진부했지만 그녀의 고민은 깊었다.

국내 디자이너 윤진선, 홍선영, 채수경 씨도 재활용 원단을 사용한 의상을 선보였다. ‘자투리 원단의 두 번째 삶’으로 명명됐다. 이 밖에 이번 전시에서는 손바느질로 완성된 친환경 웨딩드레스, 몸매를 자유롭게 하는 의상, 입는 사람의 존재감을 드러내는 의상 등 윤리적으로 해석된 다양한 패션이 소개되고 있다.

:윤리적 패션:

윤리적 패션은 최근 세계 패션계에 떠오른 주요 이슈다. 친환경 소재, 공정무역, 재활용 등을 기반으로 한다. 윤리적 실천을 통해 의생활의 가치를 모색하자는 취지다. 구체적으로는 친환경 소재를 사용하고, 패스트 패션과 같은 물자낭비를 막고, 환경을 오염시키는 의상을 만들지 말자는 움직임이다. 또 낮은 임금을 바탕으로 노동력을 착취해 생산된 패션도 지양한다.

강혜승 기자 fineda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