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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나는 공부/SCHOOL DIARY]“단발여학생이 허공에 떠서…”

입력 | 2009-06-23 02:58:00


돌아온 납량의 계절… 으스스한 여고괴담, 하지만 짜릿

무더운 여름이 다가오면 ‘학교괴담’이 다시 고개를 든다. 학교마다 전설처럼 내려오는 무서운 이야기는 학생들에겐 더위를 잊는 방편이자 공부 스트레스로부터 탈출해 판타지의 세계로 가는 통로이기도 하다.

최근 전국 각지에서 떠도는 학교괴담 중 간담이 서늘해지는 두 편을 엿들어보자.

먼저 ‘저주받은 이층침대’ 편. 경기도의 한 고등학교 기숙사 ○호. 이 방 이층침대의 아래 칸에서 잠을 자면 귀신의 저주 때문에 반드시 가위에 눌린다는 얘기다. 이 학교 기숙사에서 생활하는 1학년 K 양은 이렇게 전한다.

“그 침대에서 잠을 자다가 가위에 눌리면 갑자기 귀를 찢을 듯한 아기 울음소리가 들려온대요. 수십 년 전에나 있었을 법한 구식 교복을 입은 한 여고생이 아기의 손을 잡고 멍하니 이쪽을 쳐다보는 모습도 보이고요. 아, 그런데 며칠 전 저도 그 침대에서 자다가 결국 듣고야 말았어요. 그 아기 울음소리를. 겁에 질려 눈을 떠보니 단발머리를 한 여학생이 막 태어난 아기를 안고서 허공에 두둥실 떠 있더라고요. 헉.”

그 다음은 ‘폐쇄된 신관 3층’ 편. 한 여고의 신관. 학생들이 사용하던 이 건물 3층이 올해 초 폐쇄됐다. 학생들이 수업을 듣던 교실은 결국 창고로 변했다. 과연 신관 3층에선 무슨 일이 일어났던 걸까.

언제부턴가 3층 복도 끝 화장실에서 귀신을 봤다는 학생이 하나둘 나타나기 시작했다. 천장이 뻥 뚫린 화장실 두 번째 칸에서 정체 모를 존재가 구멍을 통해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었다고 목격자들은 입을 모았다. 사람의 형상을 하고 있으나 이목구비는 찾아볼 수 없었다는 이들의 증언은 일치했다.

3층에서 얼굴 없는 귀신을 봤다는 여학생이 늘기 시작할 무렵 신관 3층이 폐쇄됐다. 건물이 지어진지 3년 만의 일. 하지만 요즘도 가끔 이른 아침이면 아무도 없는 3층 화장실에서 누군가 쓰레기통을 발로 툭툭 차는 소리가 계속해서 들려온다고 학생들은 전한다.

학교괴담은 끝이 없다. 음악실에서 밤늦게까지 혼자 피아노 연습을 한 뒤 음악실을 막 나서는 순간, 아무도 없는 음악실에서 불현듯 피아노 선율이 들려왔다는 이야기, 야간자율학습시간에 어깨가 너무 무거워 무심결에 교실 천장을 올려다봤는데 귀신이 자신의 어깨를 밟고 서 있었다는 이야기 등.

그런데 학생들의 입을 통해 끊임없이 확대 재생산되는 학교괴담들에서는 두 가지 중요한 공통점이 발견된다.

첫째, 사건은 주로 선생님의 감시망이 미치지 않는 지하 창고나 외딴 화장실, 학생들의 발길이 뜸한 미술실이나 음악실 등에서 일어난다는 것. 학생들이 생각하는 이들 ‘은밀한 장소’야말로 치열한 입시경쟁이나 집단 따돌림, 1등 지상주의, 체벌과 같은 학교 관련 이야깃거리들이 서식할 수 있는 최적의 장소이기 때문이다.

사실, 학생들이 괴담을 ‘즐기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성적을 비관해 스스로 목숨을 끊은 학생의 저주 탓에 학교에 무시무시한 일이 벌어진다는 식의 이야기를 친구들과 공유하고 또 널리 퍼뜨리는 과정에서 학생들은 ‘금기’를 깨는 데서 오는 묘한 희열을 느끼는 것. 학생들이 ‘귀신’의 입을 빌려 학교에서 벌어지는 부당한 사건들을 입 밖에 내어 말함으로써 대리만족을 느낀다는 해석도 있다.

둘째, 학교괴담 속 주인공 혹은 희생자(귀신)는 십중팔구 여학생이란 점. 10년의 역사를 가진 영화 ‘여고괴담’ 시리즈도 그렇듯 학교괴담은 여고 혹은 여학생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경우가 많다.

심영섭 대구사이버대 상담심리학과 교수는 “감수성이 풍부하고 예민한 여학생들은 학업에서 오는 극도의 스트레스와 친구에 대한 질투심, 경쟁에 대한 두려움 같은 복합적인 감정을 무서운 이야기를 통해 해소하려는 경향이 있다”고 설명했다. 이런 점에서 운동이나 게임을 통해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남학생들과 차이가 있다는 것이다.

고3인 민모 양(18·서울 중구 신당동)은 “학교괴담을 친구로부터 전해 듣다가 겁에 질려 비명을 지르고 나면 어느새 스트레스가 확 풀린다”면서 “특히나 귀신 얘기는 매운 음식처럼 중독성이 있어서 한 번 듣기 시작하면 끊을 수가 없다”고 말했다.

이혜진 기자 leehj08@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