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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출! 가계부채]마이크로크레디트 대상 된 5명의 각오

입력 | 2009-05-22 02:56:00

동아일보와 보건복지가족부, 하나금융그룹이 공동으로 펼치는 ‘탈출! 가계부채’ 캠페인을 통해 무담보 소액신용대출 대상자로 선정된 다섯 명이 20일 재기를 다짐하며 파이팅을 외치고 있다. 왼쪽부터 김성복 최영국 홍상연 이정희 김명규 씨. 변영욱 기자

5월부터 포도재무설계 재무상담사로 나선 지창길 씨(가운데)가 서울 강남구 역삼동 포도재무설계 서울지점에서 부채클리닉 상담을 하고 있다. 사진 제공 포도재무설계


“15억 로또당첨보다 더 값진 1500만원… 내인생 구조조정해 희망 본보기 되겠다”
무담보 대출에 창업교육까지
음식점-전파사 재기 꿈 키워

“로또 15억 원 당첨금보다 더 값진 1500만 원입니다.”(최영국 씨·39)

“힘든 고비마다 무너지지 않고 악착같이 산 데 대한 보상 같네요.”(김명규 씨·49·여)

“아이들이 ‘엄마는 행운아’라고 격려해주더군요.”(이정희 씨·48·여)

“웃음이 사라진 얼굴이었는데 이젠 웃을 일만 남았네요.”(홍상연 씨·39)

“내 인생을 구조조정했다는 각오로 꼭 성공하겠습니다.”(김성복 씨·62)

동아일보와 보건복지가족부, 하나금융그룹이 공동으로 펼치는 ‘2009 함께하는 희망 찾기1―탈출! 가계 부채’ 캠페인을 통해 무담보 소액신용대출(마이크로크레디트) 대상자로 선정된 다섯 명이 20일 한자리에 모였다. 전북 군산시, 대전, 경기 남양주시 등 전국 각지에서 온 이들은 하나희망재단이 마이크로크레디트 대상자로 선정된 54명을 위해 마련한 ‘하나희망가족 교육’에서 만나 각자의 사연을 털어놓으며 재기의 의욕을 다졌다.

▶본보 16일자 A6면 참조
가계빚 줄이니 재기의 빛 비치네요

이날 서울 종로구 견지동 소상공인진흥원 서울교육센터에서 진행된 교육에서 이들은 마케팅 요령, 장부기장 및 세금 계산법 등 창업에 꼭 필요한 내용을 배웠다. 힘들었던 과거를 뒤로 하고 이제 막 ‘희망’이라는 화살을 쏘아올린 이들에게서 새로운 인생에 대한 설렘을 느낄 수 있었다.

○ ‘못난 가장’에서 ‘멋진 가장’으로

최영국 씨가 15일 하나희망재단으로부터 마이크로크레디트 대상자로 선정됐다는 소식을 듣고 가장 먼저 떠오른 사람은 세 딸이었다. 인터넷 이용료를 내지 못해 인터넷이 끊기고 월세 20만 원짜리 원룸에서 온 가족이 함께 생활하는 와중에도 중학생, 고교생인 딸들은 중간고사에서 당당히 반 1등을 해 아빠를 기쁘게 했다.

“집과 가게에 가압류 딱지가 다섯 번이나 붙었어요. 학원도 못 보내 마음고생이 심했는데 아이들이 방황하지 않고 집에서 책을 보더군요. 기특한 아이들을 생각해서라도 이번엔 기필코 성공할 겁니다.”

최 씨는 대전 서구 둔산동에서 찌개전문점인 ‘전원일기’를 운영하고 있다. 올해 들어 불황으로 장사가 더 안되는 바람에 사채까지 끌어다 쓰는 형편이 됐다. 그는 하나희망재단에서 지원받는 1500만 원으로 가게 인테리어를 새롭게 해 낮에는 찌개전문점, 저녁엔 민속주점으로 영업을 확대할 계획이다. 최 씨는 “신용불량자인 내게 돈을 빌려주는 금융기관이 없었는데 자활 의지만 믿고 선뜻 지원을 결정해 준 하나희망재단에 감사하다”며 “1500만 원은 로또 15억 원 당첨금보다 값지다”고 말했다.

홍상연 씨는 부인과 두 딸, 어머니와 사는 가장(家長)이다. 1999년 중사로 전역할 때까지 그는 세상에 두려울 게 없는 열혈 청년이었다. 전역 후 예비군 훈련에서 중학교 동창을 만나 군에서 힘들게 모은 4000만 원을 사기당한 후 그의 인생은 달라졌다. 빚을 갚기 위해 신용카드 돌려막기를 반복하다 끝내 사채를 쓰게 됐다. 대리운전, 부동산 중개업 등 닥치는 대로 일을 했지만 1억 원 넘게 불어난 빚은 30대 청년에게 너무도 버거운 짐이었다.

“한때는 답답한 마음에 무작정 집을 나왔어요. 무료급식소에서 끼니를 해결하고, 공공화장실에서 세수하고, 지하철역에서 박스를 깔아놓고 자는 생활을 한동안 했습니다. 그때는 악에 받쳐 부동산 투자 ‘한 방’이면 부채를 갚고 새롭게 시작할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그렇게 하루하루 피폐하게 살다가 지금의 아내를 만나 마음을 잡았습니다.”

결혼 후 홍 씨는 공고와 군대에서 배웠던 전기 기술을 본격적으로 연마했다. 이번에 지원되는 1700만 원으로 서울 동작구 노량진에 ‘은혜전기’라는 전업사를 차릴 예정이다. ○ 좋은 본보기로 남겠다

‘야무진 아줌마’ 이정희 씨는 지난해 4월 부부 모두 파산을 신청하는 힘든 환경 속에서도 독학으로 한식, 일식, 중식, 양식 등 4개의 조리사자격증을 취득했다. 이 씨는 경기 남양주시에 자그마한 국수전문점을 낼 계획이다.

전북 군산시 나운동에서 ‘일동생활건강’이라는 건강보조식품 가게를 열 김성복 씨는 “우리 다섯 명 모두 잘돼서 우리처럼 힘든 시간을 보내는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고 싶다”고 다짐했다. 김명규 씨도 “지금까지 살면서 맥주 경품권 하나 당첨된 적이 없어 스스로 운이 없다고 생각했는데 이번처럼 큰 행운이 오려고 그동안 사소한 운은 피해간 것 같다”며 “부채클리닉의 상담사와 하나희망재단 자문위원의 격려가 큰 힘이 됐다”고 말했다.

동아일보는 빚 부담에 시달리는 저소득층이 빚을 갚고 성공적으로 재기할 수 있도록 무료 부채클리닉과 마이크로크레디트를 연계한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이들 다섯 명은 동아일보의 캠페인 기사를 읽고 복지부의 무료 부채클리닉을 받은 뒤 하나희망재단에 마이크로크레디트를 신청해 무담보 소액신용대출자로 최종 선정됐다.

부채클리닉 신청: 포도재무설계 02-2088-8802, www.podofp.com

신수정 기자 crystal@donga.com

“어려운 사람들 도우며 우리도 인생이모작”

금융권 퇴직자들 상담사 활동

002년 중소기업은행 지점장을 끝으로 정년퇴임한 지창길 씨(65)는 이달 초부터 포도재무설계 재무상담사로 ‘인생 이모작’을 시작했다. 지 씨가 맡은 사람은 9명. 일주일에 두 번 서울 강남구 역삼동 포도재무설계 사무실로 출근해 상담을 한다.

지 씨가 1, 2차 상담을 모두 끝내고 받는 돈은 한 사람당 10만∼15만 원. 상담이 길어지면 한 달 이상 걸리기 때문에 상담 진행 결과에 따라 상담비를 못 받는 달도 있다. 그는 “돈보다는 보람을 찾기 위해 시작한 일”이라며 “40년 가까이 은행에서 일하면서 익힌 지식과 경험을 다른 사람을 위해 쓰고 싶어서 하게 됐다”고 말했다.

보건복지가족부의 의뢰로 부채클리닉을 주관하고 있는 포도재무설계는 ‘탈출! 가계부채’ 캠페인이 시작된 뒤 부채클리닉 수요가 급증하자 금융권 퇴직자들을 대상으로 재무상담사를 모집했다. 풍부한 금융지식과 인생 경험이 있는 금융권 퇴직자들이야말로 저소득층의 재무 조언자로 적격이라는 판단에서다.

1차로 지 씨를 포함한 5명의 금융권 퇴직자를 3개월간 교육시킨 뒤 5월부터 부채상담에 투입한 결과 기대 이상이라는 내부 평가가 나왔다. 포도재무설계 라의형 대표는 “부채클리닉은 단순히 금융지식을 전달하는 데 그치지 않고 부부관계, 자녀교육 등 가정의 문제까지 조언해야 하는 경우가 많다”며 “그런 점에서 인생 경험이 풍부한 퇴직자들로부터 상담을 받는 사람들의 만족도가 높다”고 말했다.

신수정 기자 crystal@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