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황기 많은 기업들이 회사 외부에서 현금을 확보하기 위해 애쓰고 있다. 하지만 회사 내부의 운전 자금만 잘 관리해도 생존에 필요한 충분한 현금을 확보할 수 있다. 이를 위해서는 단기 실적보다는 회사의 재무 상황을 개선하는 방향으로 의사결정이 이뤄지도록 직원들의 성과 평가 기준을 바꿔야 한다. DBR그래픽
■ 佛 인시아드경영대학원 연구팀 HBR에 기고
영업사원 평가기준 재점검 - 실질적 수익구조로 전환시켜야
생산공정 아웃소싱도 과감하게
‘현금은 왕’이다. 특히 경기 침체기에는 현금이 기업의 명운을 좌우한다. 기업들은 현금을 확보하기 위해 금융회사와 증권시장 문을 두드리는 것은 물론이고 개인 네트워크까지 총동원한다. 그러나 현금 확보를 외부에만 의존하기보다 회사 내부를 먼저 점검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다.
케빈 카이저 프랑스 인시아드경영대학원 겸임교수 연구팀은 하버드비즈니스리뷰(HBR) 최근호(2009년 5월호)에 실은 논문에서 “기업들이 내부 운전자본 관리만 잘하면 회사의 운명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칠 충분한 현금을 확보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기업의 현금 확보 전략과 관련해 새로운 시각을 제시한 이 논문 전문은 동아비즈니스리뷰(DBR) 33호(5월 15일자)에 실려 있다.
○ 직원 평가 지표부터 바꾸라
연구팀은 지금까지 직원들의 성과 평가에 활용했던 수익성 관련 지표를 몽땅 재검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예를 들어 필요 이상으로 물건을 더 사면 가격을 깎아주겠다는 납품 업체의 제안을 받아들이면 재고가 늘어나 현금이 묶이게 된다. 하지만 이런 재고 비용은 손익계산서에 나타나지 않는다. 그런데 구매 담당자는 회사에 불이익을 주는 이런 제안을 받아들여야 오히려 보너스를 더 받을 수 있다. 연구팀은 이런 문제를 막기 위해 손익계산서상의 이익뿐만 아니라 대차대조표까지 감안해 직원들의 성과를 평가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현금 확보를 위해서는 영업 사원들의 성과 평가 기준도 바꿔야 한다. 영업 사원들은 매출이나 이익 같은 손익계산서상 지표를 기준으로 성과를 평가받는다. 따라서 무슨 수를 써서라도 물건을 많이 팔기만 하면 보너스를 두둑이 받는다. 연구팀은 “영업 사원들은 매출 증대가 최고 목표여서 고객이 오랜 기간 대금 납부를 연기할 수 있도록 조건을 수정해주거나, 심지어 고객이 대금을 늦게 납부하더라도 재촉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이렇게 대금 지불이 연기되면 현금이 묶이게 돼 경기 침체기에 기업은 치명상을 입을 수 있다.
연구팀은 일본의 한 제련업체 사례를 제시했다. 이 회사의 신임 부사장은 영업사원들에게 “대금 지급 날짜가 다가오면 고객에게 전화를 걸어 돈을 제때 지급해달라고 요구하라”고 지시했다. 이에 영업사원들은 당혹스러워하며 “그런 식으로 영업하면 경쟁업체에 고객을 빼앗길 것”이라고 항변했다. 하지만 부사장은 “만약 우리가 약속한 날짜보다 물건을 늦게 발송하면 고객들은 우리에게 망설임 없이 전화를 할 것”이라며 “우리가 기한 내에 대금을 지급해달라고 전화하지 못하는 이유가 무엇이냐”고 따졌다. 결국 영업사원들은 고객에게 전화를 걸어 제때 대금을 납부해달라고 부탁했다. 또 고객과 자주 통화하면서 그 기업의 사정을 더 잘 알게 돼 문제가 생길 가능성이 높은 회사에 대해서는 배송 즉시 대금을 납부토록 하는 제도를 마련했다. 결국 이 회사의 외상매출금 회수 기간은 185일에서 45일로 줄어들었고, 연간 1억1500만 달러의 자본이 회수돼 회사 계좌에 차곡차곡 쌓였다
○ 품질에 대한 지나친 집착도 문제
많은 제조업체들이 품질 향상에 몰두하고 있다. 하지만 생산 과정에서 지나치게 품질에만 집착하면 엄청난 자금이 생산 공정에 묶여 현금화되지 못한다. 연구팀은 이탈리아의 한 식품 제조업체 사례를 들어 품질에 대한 지나친 집착이 현금 확보에 걸림돌이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 식품 업체는 12∼24개월 숙성시킨 고가 제품군을 판매하고 있었다. 이들 고가품의 매출 비중은 25% 정도였지만 수익성은 평균 이하였다. 회사 경영진은 포트폴리오 구성상 고가 제품이 반드시 필요하고 브랜드 명성을 높이는 데 도움이 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경제 상황이 악화되고 나서야 경영진의 태도가 바뀌었다. 이 회사 경영진은 우수한 품질을 위해 오랜 기간 숙성하는 기존 제조 방법을 그대로 유지하면 회사의 부담이 엄청나게 늘어난다는 사실을 파악했다. 따라서 과감한 아웃소싱 등 총체적인 생산 공정 재설계를 통해 이 회사는 생산 공정에 묶여 있었던 수천만 유로의 자금을 활용할 수 있었다. 연구팀은 “품질이 낮아지기는 했지만 고객이 인지할 수준은 아니었기 때문에 판매량은 별로 줄어들지 않았다”며 “훨씬 적은 비용으로도 기존 이익 수준을 유지하게 돼 이 회사의 투자자본 수익률은 급격히 개선됐다”고 분석했다.
김남국 기자 march@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