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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잉체벌’ 교사에 징역형…그러나 끝나지않은 싸움

입력 | 2009-05-06 12:04:00


징역 8개월에 집행유예 2년.

지난달 23일 인천지방법원은 과잉체벌로 불구속 기소된 교사에 대해 이 같은 판결을 내렸다. 지금까지 과잉 체벌 교사에 대해 내려진 판결 중 가장 '센' 축에 드는 결정이다.

피고는 지난해 10월 인터넷을 들썩이게 했던 과잉체벌 논란의 가해자인 교사 안모 씨. 초등학교 2학년생의 담임교사였던 그는 같은 반 강모, 나모 어린이를 '거짓말을 한다', '숙제를 해오지 않았다'는 이유로 수십여 대씩 때려 전치 2-3주 가량의 치료를 요하는 둔부좌상을 입혀 불구속 기소됐다. 안 씨는 이날 판결에 불복해 항소한 것으로 알려졌다.

과잉 체벌 교사에 대해 이례적인 징역형 판결이 내려졌지만, 피해학생 측과 누리꾼들은 여전히 '부족하다'며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이들은 포털 사이트와 교육청 게시판, 안 씨의 변호를 맡은 법무법인의 홈페이지에 글을 올리며 교육계를 성토 중이다.

누리꾼들은 이 기회에 두루 뭉실한 교육법 시행령을 개정해 비인격적인 체벌을 금지하자는 주장을 펼쳤다. 마침 지난달 말 광주에서 여고 교사가 시험성적이 나쁜 학생들의 치마를 벗기는 벌을 준 사건이 벌어지고 3일 자율학습 2시간을 빠졌다는 이유로 교사에게 발바닥 110대를 맞은 고교생이 자살하는 사건 등이 잇따라 발생하면서 이러한 주장에 힘이 실리고 있다.

● 길고 길었던 싸움

이번 사건은 인터넷을 통해 불거졌으나 1심 선고까지 험난한 길이 이어졌다. 해당 교사는 처음엔 해임 처분됐으나 교원소청심사위에서 3개월 정직으로 뒤집혔다. 재판 역시 검사 측에서 300원 약식 기소에 그쳤지만 재판부의 요청으로 비로소 정식 재판에 회부되게 된 것.

재판부는 해당 교사인 안 씨에게 징역형을 내리되 △안 씨가 피해자들의 치료비 및 향후 치료비로 607만원을 인천광역시 학교안전공제회에 입금하고 △변론 종결 후 다시 피해자 나 양과 강 군을 위해 각각 500만, 300만원을 공탁한 점 △안 씨 동료 교사들의 탄원서 제출 △만 1살도 되지 않은 갓난아이를 돌봐야 한다는 점 △교사의 경우 국가공무원법상 집행유예의 판결만으로도 '당연 퇴직사유'에 해당되는 점 등을 고려해 집행 유예를 선고한다고 밝혔다.

피해아동 측과 누리꾼들은 이번 판결을 환영하면서도 "우리의 싸움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고 말했다. 사건이 인터넷에 공개된 뒤 개설된 '초2체벌논란 카페'에는 "처음에 안 씨를 교육청이 해임 했을 때도 우리는 끝난 줄 알았다. 하지만 아니었다. 교육청에 다시 민원을 넣고 재판부에 진정서를 내자"는 내용의 글들이 올라왔다. 항소에 대비해 "인천시 아동전문기관 명의로 아동학대 의견서를 발급받고 변호사를 구해 민사소송도 준비하자"는 글도 있었다.

● 학부모 "사랑의 매? 학교를 못 믿겠다"

피해아동 나 양의 어머니 김모 씨는 "학교는 교사 편이다. 학교에 너무 실망했다"고 말했다. 재판 때까지 학교 측이 보인 태도 때문이다. 학교 측은 처음엔 "때린 적이 없다"고 하다가 "조금 때렸다"로 말이 바뀌었고 온라인에서 사건이 불거지자 "어머니는 집에서 애들 안 때리느냐"고 하는 등 '별거 아닌 일'로 덮고 넘어가려 했다는 것이다. 또 안 씨가 학교 측에서 만든 탄원서를 들고 교원소청심사위에 달려간 점도 김 씨 가족의 힘을 빠지게 했다.

김 씨는 나 양이 맞은 이유도 학교 측 주장과 다르다고 했다. 숙제를 해오지 않았다고 하는데 문제의 숙제는 김 씨와 함께 했다는 것. 나 양은 강 군이 체벌 당하는 것을 보고 울다가 함께 매질을 당했다는 것이 부모 측의 주장이다.

"교육적인 목적의 매질은 없었어요. 의심 가는 일은 전에도 있었습니다. 아이를 사지(死地)로 몬 것 같아 속이 상해요. 판검사 앞에서만 죄송하다고 하면 다입니까. 선생님께 (사과)편지 한 장 써달라고 했는데 안 써줍니다. 아이들의 정신과 치료를 해주시는 의사 선생님이 치료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해서 부탁했지만……. 전화로 욕이나 하고."

재판부에 따르면 안 씨는 2월 17일 경 2 차례에 걸쳐 김 씨에게 '천벌 받을 짓 그만하고 애송이 서방이나 잘 관리해라 살고 싶으면 XXX야', '니가 저지른 짓 혼자 벌 받아야지 여러 사람 죄 짓게 하면 어떻게 감당하려고 그러나'라는 문자를 발송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안 교사는 자신의 어머니가 한 일이라고 주장하고 있으나 김 씨는 이 일로 한 번 더 정신적 고통을 받았다. 나 양은 지금도 정신과 치료를 받고 있다. 자해를 하고 학교 앞에만 가면 부들부들 떤다. 김 씨는 "더 이상 학교를 믿을 수 없다"며 "대안 학교나 홈 스쿨링을 고려 중"이라고 했다.

●누리꾼들 "체벌은 상벌위원회에서 결정하도록 해야"

'초2체벌논란' 카페를 만들고 피해 아동 가족을 돕고 있는 강영숙 씨는 체벌을 금지하는 국회 청원 운동을 준비 중이다. 자영업자였던 강 씨는 생업도 접고 대국민 서명운동을 온·오프라인(kkr.topsystem.net/)에서 진행 하고 있다. 강 씨는 또한 이번 판결을 알리는 전단을 만들어 일선 학교에 배포할 예정이라고 한다.

강 씨는 "교육계를 매도하려는 것이 아니라 비이성적인 사태를 함께 막아보자는 것"이라고 강조한 뒤 "일차적으로 체벌도 범죄라는 것을 일선 학교에 알리고자 한다"고 말했다.

같은 운동을 하고 있는 회사원 송명수 씨는 체벌에 대한 정확한 기준과 절차가 없는 모호한 법령을 고쳐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법이 '교육상 불가피한 경우' 학생에게 신체적 고통을 가하는 체벌이 가능하도록 정해 놓았다"며 "교사가 마음대로 처벌하지 못하도록 상벌위원회를 설치해야 한다"고 말했다.

현행 초중등교육법 시행령 31조 1항은 '학교의 장은 교육상 필요하다고 인정할 때에는 학생에 대해 학교 내 봉사, 사회봉사, 특별교육 이수, 퇴학 처분 등의 징계를 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같은 조 제 7항에서는 '학교의 장은 법 제18조 제1항 본문의 규정에 의한 지도를 하는 때에는 교육상 불가피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학생에게 신체적 고통을 가하지 아니하는 훈육ㆍ훈계 등의 방법으로 행하여야 한다'고 정하고 있다.

송 씨는 학교 내 체벌을 인정하는 미국의 예를 들기도 했다. 학생의 90%가량이 빈민층인 사우스캐롤라이나 주의 존 C캐훈 초등학교는 교내 폭력이나 절도를 행한 중범죄 학생에게만 체벌을 가하고 이때에도 면밀한 경위를 조사한 후 시행한다. 우선 상담교사의 조언을 구하며 이런 절차를 통해서도 뉘우칠 기색이 없는 학생의 경우에만 일반 교사가 아닌 행정관이 회초리로 3대 때린다. 이 학교는 합리적인 체벌로 문제아들을 크게 계도해 뉴스위크지 최신호에 실리기도 했다.

그는 "선생님이 아이를 직접 혼내면 감정이 섞일 수 있다. 이는 범인을 잡은 경찰이 직접 범인에게 형량을 선고하고 처벌하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그는 "우리 아이는 초등학교 1학년 때 너무 오래 무릎을 꿇는 벌을 받아 관절염을 앓고 있지만 어디 하소연도 못했다"며 "사랑의 매? 왜 학교는 힘없는 집 자식들만 사랑하느냐. 이제는 솔직히 사랑하기 않았기 때문에 그랬다고 인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법원은 체벌에 대해 어떻게 보고 있을까. 이번 사건 판결문에 적힌 양형 이유는 다음과 같다.

"법령과 입법취지 등에 비춰볼 때 징계방법으로서의 체벌은 허용되지 않으며, '지도'의 방법으로서도 훈육·훈계가 원칙이고 학생에게 신체적 고통을 가하는 체벌은 다른 교육적 수단으로는 도저히 학생의 잘못을 교정하기 불가능한 예외적인 경우에 한해 학교장의 위임을 받아 하는 것이다. 또한 그 방법과 정도에서도 사회통념상 용인될 수 있을 만한 객관적 타당성을 갖추었던 경우에만 가능하다."

최현정 동아닷컴 기자 phoeb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