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은 13일 쿠바에 가족을 둔 미국인들의 현지 방문 규제를 없애고 송금 제한도 완화하는 한편 통신회사가 쿠바와 광(光)케이블을 설치해 위성통신사업을 시행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인도적 구호품’을 제외한 쿠바에 대한 수출입 금지조치는 유효하며 쿠바에 친지가 없는 일반인의 쿠바 현지 여행과 송금은 지금처럼 제한을 두기로 했다.
로버트 기브스 백악관대변인은 이날 정례브리핑에서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쿠바 국민들이 기본적인 인권을 누리고 자국의 미래를 자유롭게 결정할 수 있도록 하는 일련의 조치를 지시했다”며 “대통령의 조치는 쿠바인들과 외부 세계의 자유로운 정보소통이 가능하게 하는 한편 쿠바에 친지를 둔 미국인의 현지 방문이 자유롭게 이뤄지도록 모든 제한 조치를 해제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미국은 1959년 쿠바에 카스트로 정권이 들어선 뒤 1962년 옛 소련의 미사일 기지 설치로 인한 위기가 고조되면서 존 F 케네디 대통령 시절 쿠바에 대한 금수조치를 단행한 이후 지금까지 그 골격이 유지돼 오고 있다.
▽어떤 조치 이뤄지나=쿠바에 친지를 둔 미국인은 그동안 3년에 한 번씩 2주 동안만 방문할 수 있었다. 이번 조치로 제한 없이 쿠바를 찾을 수 있게 됐다. 1인당 연간 1200달러까지만 쿠바로 송금할 수 있었던 송금제한도 풀렸다. 이와 함께 미국 정부는 미국 통신서비스회사들이 쿠바와 통신로밍 서비스를 개시할 수 있도록 하는 한편, 쿠바 주민이 통신과 위성라디오, 위성TV 서비스를 제공받을 때 미국 거주자가 요금을 내주는 것도 허용했다.
1959년 쿠바 공산화 이후 미국의 금수 조치로 외부세계와 고립된 쿠바에 정보의 유출입이 원활하게 이뤄지도록 하겠다는 뜻이다. 하지만 통신서비스 확대 문제는 쿠바 당국의 승인이 있어야 하는 문제이기 때문에 쿠바 정부의 대응이 주목된다.
▽적대관계 청산?=이번 조치에 대해 ‘미국판 햇볕정책’이라는 평가도 나온다. 오바마 대통령은 대선 후보 시절부터 “쿠바에 자유를 가져다주는 (외교)사절로는 쿠바계 미국인들보다 더 나은 존재가 없다”며 적극적인 포용정책을 공언했다. 이날 백악관의 발표에 대해 보수파 사이에서는 쿠바에 대한 규제 완화는 결국 보상을 주는 것으로 카스트로 정권의 입지만 강화해주는 것이라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한편 피델 카스트로 전 국가평의회 의장은 13일 관영 웹사이트에 올린 글에서 “쿠바는 미국에 ‘자선’을 구하지 않는다”면서 “47년간 존속하고 있는 금수 조치를 끝내야 한다. 금수 조치에 대해 한마디 말도 없다는 것은 가장 잔인한 행동”이라고 비난했다.
워싱턴=하태원 특파원 triplet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