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트렌드 생활정보 International edition 매체

[신나는 공부/SCHOOL DIARY]프로게이머 놀면서 돈도 벌고? 꿈깨

입력 | 2009-03-31 02:53:00


프로입문 고2 “너무나 험한 길… 그냥 놀이로 즐기세요”

카메라에 빨간불이 켜졌다. 아마추어 스타크래프트(온라인 게임) 대회인 제4회 ‘엘리트 학생복 스쿨리그 2008’(스쿨리그) 결승전 생중계가 시작됐다. 전국 중고교 1200여 팀이 참여한 이번 대회. 노준규 군(18·부천 원미고 2학년)과 두 명의 친구로 구성된 팀은 7개월의 접전 끝에 결선에 올랐다.

맙소사. 우리 팀 선수 두 명이 부산 동아공고 팀의 첫 번째 선수에게 연달아 패했다. 나마저 진다면…. 식은땀이 흐른다. 침착하게 상대의 본진을 정찰한다. 수비가 상대적으로 허술하다. 1년간 연마해온 ‘멀티태스킹’(공격과 수비를 동시에 하는 것) 기술을 발휘할 때. 상대팀의 두 선수를 잇달아 제쳤다. 이젠 상대의 마지막 선수. “올킬(한 명의 선수가 상대팀의 선수를 모두 이겼다는 뜻)입니다!” 장내에 아나운서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해냈다.

노 군은 8일 열렸던 스쿨리그를 떠올리며 연방 웃음을 터뜨렸다. 그에게 이번 대회는 우승 이상의 의미가 있다. 프로게임구단인 ‘웅진 스타즈’의 2군 선수로 발탁돼 꿈에 그리던 프로 게이머가 됐기 때문이다.

중학교 2학년 때까지만 해도 노 군은 집과 학원을 오가는 평범한 학생이었다. 친구들과 어울려 게임을 시작하긴 했지만 그저 한두 시간 하고 마는 오락이었을 뿐.

“열심히 공부해도 평균 70점대를 벗어나지 못했어요. 학원에서 나눠주는 문제집을 꼬박꼬박 풀고, 시험기간엔 하루 5시간 넘게 주말 보충반도 빠지지 않고 다녔는데…. 제가 외동아들이라 부모님이 기대를 많이 하셨어요. 공부 때문에 스트레스가 심했죠.”

그런데 게임은 공부와 달랐다. 열심히 한 만큼 실력이 쌓이는 게 아닌가! 노 군은 친구들 사이에서 ‘게임 왕’으로 통했다. 드디어 진짜로 하고 싶은 일이 생겼건만 부모의 기대를 알고 있었기에 애만 태웠다.

“중학교 3학년 때 청소년 게임대회에서 1등을 했어요. 상품으로 컴퓨터 모니터를 받았는데 부모님이 기뻐하셨죠. 그때 프로 게이머가 되겠다는 결심을 굳혔어요.”

노 군은 연습시간을 늘렸다. 다니던 학원도 끊었다. 게임중계 채널을 보면서 프로 게이머들의 전술을 따라해 보았다. 등하굣길에는 머릿속으로 자신만의 전략을 구상했다.

“게임 때문에 실업계 고등학교에 가겠다고 말씀드렸어요. 부모님의 반대는 더 심해졌죠. 결국 인문계에 진학했어요. 그때 제 미래를 걸고 부모님과 약속했어요. 1년 안에 프로 게이머가 되지 못하면 게임을 완전히 포기하겠다고….”

고등학생이 되면서 하루 6시간 이상 게임연습을 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실력이 늘지 않았다. 1학년 초부터 한국e스포츠협회(keSPA)가 우승자에게 ‘준 프로 게이머’ 자격을 주는 ‘커리지매치’에 매달 참여했지만 늘 우승을 목전에 두고 고배를 마셨다.

“죽도록 하고 싶은 일을 포기하긴 싫었어요. 용돈을 아껴가며 대회 참가비를 냈죠. 도전하고 또 도전했어요.”

지난해 9월 노 군은 커리지매치에서 우승하며 준 프로 게이머가 됐다. 부모님과의 약속시한인 이번 달엔 아마추어 스타크래프트 대회로선 최대 규모라는 스쿨리그에서 우승을 차지하며 정식 프로 게이머가 됐다.

“프로 게이머가 되는 건 너무 어려워요. 되고 나서는 더 치열한 경쟁을 해야 하죠. 프로 게이머가 되겠다는 확실한 목표나 재능이 없다면 많아야 하루 한 시간 정도 게임을 하는 게 적당하다고 생각해요. 단지 공부가 싫어 게임에 빠지면 나중엔 꼭 후회하게 되거든요. 게임 때문에 부모님과 마찰이 생긴다면 저처럼 약속을 해보세요. 그리고 그 약속을 꼭 지키세요. 부모님에게 인정받기 위해 노력하면 부모님은 최고의 지원군이 되어주니까요.”

이혜진 기자 leehj08@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