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소 성격은 순둥이지만 마운드에만 서면 호랑이 같은 승부사로 돌변합니다.
호리호리한 몸에 낭창낭창한 투구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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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네수엘라와의 준결승전을 앞두고 김인식 감독도 고민이 많았습니다.
준결승 한 경기에 윤석민을 소모하느냐, 준결승과 결승에 모두 활용하느냐. 쉽지 않은 선택의 문제였지만 봉중근과 함께 가장 좋은 컨디션을 유지하고 있는 그를 베네수엘라 살인타선을 막아낼 방패막이로 낙점했습니다.
그리고 그 선택은 옳은 것으로 판명났습니다. 그는 천문학적인 연봉을 받는 빅리그 타자를 상대로 조금도 주눅들지 않았습니다.
투구수 50개를 넘기면 4일간 휴식해야하는 WBC 규정에 따라 준결승에서 96개의 공을 던진 그는 결승전 마운드에 설 수 없습니다. 한 자루의 초가 촛불로 자신의 한몸을 녹이며 영롱한 빛을 발하듯, 그는 다저스타디움 마운드에서 태극혼을 불사르며 찬란하게 빛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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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네수엘라 모자를 쓰고 있더군요. 그 모습은 왜 그렇게 귀여운지…. 그리고 얼마나 자랑스러운지…. 카메라를 꺼내 “사진을 찍자”고 했더니 순박한 미소와 함께 모자를 고쳐 쓰더군요.
그리고는 카메라에 얼어붙은 초등학교 모범생처럼 차렷 자세를 취했습니다. 순간 팬들이 붙여준 ‘석민 어린이’이라는 별명이 떠올라 그저 웃고 말았습니다.
지난해 5월8일 어버이날로 기억됩니다. 광주 삼성전에서 7이닝 무실점으로 승리투수가 된 뒤 그는 “어릴 때 야구가 힘들어 두 번이나 그만두겠다고 고집을 피워 부모님이 무척 속상해하셨다”고 고백했습니다.
그가 야구를 그만뒀다면? 상상만 해도 아찔할 뿐입니다. 스물셋 에이스는 이제 야구로 부모님에게 행복을 안겨드렸습니다. 그리고 자랑스런 아들이자 대한민국의 보배투수로 다저스타디움 마운드에 우뚝 섰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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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ㅣ 이재국 기자 keyston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