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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김동원]‘들고양이’가 노동운동 추세다

입력 | 2009-03-09 02:57:00


세계적 금융위기로 촉발된 경기침체가 갈수록 악화되고 있다. 1920년대 대공황보다 더 심각한 상황으로 발전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환율 상승으로 원자재와 식량 등 생활필수품의 가격은 급등했으나 임금은 동결 혹은 삭감되어 실질임금이 급격히 줄었다. 중산층에서 하루아침에 극빈자계층으로 전락하는 가정이 늘고 노인과 임산부가 생계를 위해 저지르는 생계형범죄가 줄을 잇는다. 한국 사회가 외환위기에 이어 10년 만에 또 다른 시련을 겪고 있는 것이다.

상급단체 승인 안받고 노사협력

경제위기의 국면에서는 노사협력의 사례가 많이 발생한다. 노사 양측을 공멸시킬 위기 상황은 평소에는 상상하기 힘든 특단의 조치에 합의할 수 있는 강력한 동기가 된다. 1980년대의 네덜란드, 1990년대의 이탈리아와 아일랜드는 국가적인 경제위기를 노사정 협력으로 극복한 경우이다. 개별기업이 노사협력으로 경영위기를 이겨낸 사례도 많다. 외국에는 폴크스바겐 크라이슬러 도요타 제록스, 국내에는 LG전자 현대중공업 GM대우가 유명하다.

노동조합의 상급단체가 기업단위 노사협력을 승인하지 않을 경우 개별기업에서는 상급단체의 지침을 무시하고 협력하기도 한다. 외국에도 이런 현상이 있어서 들고양이 협력(Wildcat cooperation)이라는 용어가 생겨났다. 상급단체 허가 없이 하는 들고양이 파업(Wildcat Strikes)에서 나온 말이다. 한국에선 최근 수년 동안 들고양이 협력 사례가 자주 나타났다. 상급단체가 이념적이고 정치적인 이유로 대립과 투쟁의 지침만을 내리고 생존의 문제에 직면한 개별기업 노사 간 협력을 승인하지 않을 때 개별기업의 노조는 지침을 무시하고 협력하거나 상급단체를 탈퇴할 수밖에 없다. 투쟁적 노동운동을 대표한 민주노총을 탈퇴하는 노조가 늘고 민주노총 조합원 수도 수년간 감소하는 추세를 보이는 것도 이 경향과 무관하지 않다.

한국 노동운동의 현재 상황은 19세기 말 미국에서 생겨난 두 노조연맹을 연상시킨다. 급진적이고 이념적인 노동기사단(Knights of Labor)과 온건하고 현실적인 미국노동총연맹(AFL)은 19세기 말 미국 근로자의 이해관계를 대변하는 조직으로 탄생했다. 노동기사단은 자본주의를 부정하고 새로운 사회를 건설하자는 이념으로 시작했고 연쇄적인 파업을 성공적으로 이끌며 엄청난 세력을 떨쳤으나 정작 근로자의 고용과 생계를 돌보는 데는 소홀하여 점차 세력을 잃고 설립 30년 만에 AFL에 병합되어 완전히 소멸한다.

이념·투쟁보다 생계 위한 대안을

AFL은 처음에는 노동기사단에 밀려 미약하게 시작했으나 근로자의 실질적인 관심사항인 고용과 임금의 안정을 가장 큰 목표로 삼고 대립과 협력을 적절히 사용하는 정책을 펴서 꾸준히 성장한 결과 100년이 넘은 지금까지 미국 최대의 노동조합으로 남아 있다. 한국 근로자 역시 이념보다는 경제적인 이슈를 훨씬 더 중요한 노동조합의 역할로 인식한다는 게 반복되는 조사에서 나타난다. 이 사실이 한국의 노동운동에 주는 교훈은 너무나 명확하다. 현재의 경제위기는 미증유의 심각한 상황이다. 경제위기 상황에서 노동조합의 역할은 어느 때보다 크다. 근로자계층의 고용과 소득을 보존함으로써 국가 전체의 총수요를 유지하여 현재의 경기침체가 수요 부족으로 인한 대공황으로 가는 것을 막아야 한다.

한국의 노동운동은 1980년대 이후 개발독재에 대항하여 정치민주화와 산업민주화의 달성에 공헌했다. 이제는 이념과 투쟁보다는 근로자의 생계를 위해 실질적인 대안을 제시해야 할 때이다. 미국 노동기사단 사례에서 보듯이 변화해야 할 때 변화하지 못하는 조직은 구성원으로부터 외면 받고 결국은 단명한다. 전대미문의 경제위기 상황에서 노동조합 스스로와 기업, 사회 구성원 전체를 위해 현명한 선택이 필요하다.

김동원 고려대 경영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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