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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윈은 살아있다] 변이로 경쟁력 갖춘 선수들

입력 | 2009-03-07 02:59:00



‘共진화’ 통해 세계의 별로… 우즈와 세리 닮았다

#장면 ① 1997년 4월 14일. 미국 조지아 주 오거스타내셔널GC. 타이거 우즈가 마스터스 정상에 올랐다. 사상 첫 흑인 챔피언이자 최저타(18언더파 270타), 최연소(21세) 우승 등 갖가지 기록을 갈아 치웠다.

#장면 ② 1998년 6월 7일. 박세리는 미국 위스콘신 주 콜러 블랙울프런GC에서 열린 US여자오픈에서 연장전을 포함해 92개 홀 승부 끝에 우승했다. 맨발 투혼으로도 유명했던 이 대회에서 박세리는 대회 최연소(20세)이자 첫 동양인 우승자가 됐다.

타이거 우즈(34·미국)와 박세리(32). 성별도 국적도 다른 이들은 언뜻 보면 그리 공통점이 없어 보인다. 하지만 200년 전 태어난 찰스 다윈이 살아서 비글호가 아닌 타임머신을 타고 우즈와 박세리를 봤다면 “퍽 닮았다”며 색다른 진화론 책을 쓸지도 모른다. 유전과 변이→자연 선택→세대 유전에 이르는 다윈의 이론이 한 시대를 풍미한 우즈와 박세리의 골프 인생에 그대로 담겨 있기 때문이다.》

쟁쟁한 라이벌 도전 이겨내고 끊임없는 자기발전

꿈나무 큰 영향력… ‘제2의 우즈’ ‘세리키즈’ 키워


○ 남과 다른 나

생물학자들은 어떤 개체는 자신만의 변이로 다른 개체들에 비해 생존과 번식에 더 유리해진다고 본다.

우즈와 박세리는 그 출발부터가 여느 골퍼와는 사뭇 달랐다.

우즈는 흑인 아버지와 태국 출신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유색인종이다. 우즈가 그린재킷을 입은 미국 남부 조지아 주는 남북전쟁이 벌어졌을 때 남군의 심장부였다. 마스터스가 열린 오거스타내셔널GC는 흑인 출입을 금지한 적도 있다. 그랬기에 인종 차별을 넘어선 우즈의 우승은 지난해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당선에 비견될 만큼 미국 사회에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우즈의 타고난 천재성은 다윈이 끔찍하게 여겼던 우생학의 관점으로 풀이되기도 한다. 우즈의 아버지 피는 인디언 4분의 1, 중국인 4분의 1, 흑인 2분의 1이고 어머니 피는 중국인 4분의 1, 백인 4분의 1, 태국인 2분의 1이 섞여 ‘잡종 강세’를 보였다는 해석도 나왔다.

박세리는 어려운 가정 형편 속에서 골프에 매달렸다. 코치를 겸한 아버지가 운전하는 승합차에서 취식을 한 적도 있다. 힘겨운 시기를 거쳐 한국 선수로는 최초로 미국여자프로골프(LPGA)투어에 데뷔했지만 성공 여부는 불투명했다. 당시 한국은 세계 골프의 변방에 불과했고 국내 경제 상황은 외환위기 사태를 맞아 어둡기만 했다. 이런 상황에서 박세리는 희망의 전도사였다.

박세리는 “나를 선구자라고 부르는데 그건 정말 힘들고 압박감도 심하다. 내 뒤를 따르는 많은 후배에게 올바른 길을 열어줘야 한다는 책임감을 느꼈고 그게 나를 더 강하게 만들었다”고 말했다.







○ 살아남는 법

우즈가 마스터스에서 경이적인 스코어로 처음 우승한 뒤 오거스타내셔널GC는 해마다 코스 개조에 열을 올렸다. 폭발적인 비거리를 갖춘 우즈를 겨냥해 코스 길이를 늘이기 시작해 이젠 7400야드가 넘는다. 평소 유리알로 불릴 만큼 빨랐던 그린은 더욱 단단해졌다.

첨단 기술을 활용한 골프 장비의 눈부신 진화도 우즈의 독주를 위협했다. 미국 골프다이제스트 2월호는 지난 15년 동안 골프 용품 산업의 발전에 따라 골퍼들의 평균 핸디캡이 2타가 줄었다고 보도했다.

그래도 우즈는 이런 저항에 먼저 적응하며 세계 랭킹 1위 자리를 굳게 지켰다. 상상을 초월하는 코스 매니지먼트로 상대를 압도하고 약점으로 지적된 쇼트게임, 퍼트 실력마저 더욱 향상시켰다.

우즈의 이런 면모는 여러 개의 종(種)이 서로 영향을 주면서 진화하는 공진화(共進化·Coevolution)를 통해 생존력을 갖춘 것으로 보인다.

진화론 전문가인 장대익 동덕여대 교수는 “공진화의 측면에서 보면 라이벌이나 외부 환경 등이 자기 발전에 도움을 준다”고 설명한다.

박세리 역시 안니카 소렌스탐, 캐리 웹과의 치열한 3강 구도 속에서 전성기를 구가했다.

최근 스포츠 스타는 언론 노출이 많기에 연예인과 비슷한 이미지로 대중을 열광시킨다. CF 모델로 자주 등장하고 때론 아예 배우나 코미디언 등으로 전업하기도 한다.

○ 새로운 영웅의 탄생을 향해

연간 1억 달러 이상을 벌어들이는 우즈가 골프 산업에 미친 영향은 지대하다. 우즈가 계약사인 나이키 볼을 사용하기 시작하면서 미국에서 1%도 안 되던 나이키 볼의 시장 점유율은 불과 1년 만에 10% 이상으로 뛰었다. 그가 활약한 10년 동안 미국프로골프(PGA)투어의 시즌 총상금 규모는 5배가량 뛴 2억3000만 달러로 늘었다. 우즈가 출전하는 대회의 TV 시청률은 우즈 없이 치른 대회에 비해 65% 높았다. 이른바 ‘타이거 효과(Tiger Effect)’다.

우즈를 보며 성장한 앤서니 김, 제프 오길비, 카밀로 비예가스 등은 최근 PGA투어의 새 얼굴로 떠올랐다.

10여 년 전 박세리의 성공에 주목해 골프를 시작한 ‘세리 키즈’는 어느덧 한국 여자 골프의 간판으로 세대교체를 주도하고 있다.

1988년 전후로 태어난 신지애, 박인비, 지은희, 김인경, 오지영 등은 지난해 LPGA투어에서 9승을 합작했다.

지난해 US여자오픈 챔피언 박인비는 “우리 또래들이 좋은 성적을 내면서 서로에게 자신감을 주고 동기도 부여한다”고 분석했다.

특히 신지애는 지난해 LPGA투어에서 비회원으로 3승을 거두며 박세리의 뒤를 이어 새 변이를 일으킬 후보로 떠올랐다.

최근 수영 박태환과 피겨스케이팅 김연아가 폭발적인 인기 속에 신드롬을 일으키고 있다. 박태환과 김연아는 불모지였던 분야에서 세계 최고에 올랐기에 더욱 뜨거운 찬사가 쏟아졌다.

박태환이나 김연아 같은 구체적인 목표가 생긴 만큼 일찍부터 지속적으로 체계적인 지도를 받고 있는 꿈나무들이 점점 늘어가고 있다. 이미 피겨 샛별 김나영(19)과 김현정(17) 등은 성장 가능성을 인정받고 있다. ‘태환 키즈’ ‘연아 키즈’의 탄생이 앞으로 더욱 기대되는 이유다.

김종석 기자 kjs0123@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