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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갈피 속의 오늘]1990년 옛 소련 ‘미국식 대통령제’ 도입

입력 | 2009-02-27 02:58:00


고르비 ‘영욕의 세월’

1982년 레오니트 브레즈네프가 사망하자 집권한 유리 안드로포프와 콘스탄틴 체르넨코 정권은 기본적으로 ‘브레즈네프 노선’을 답습했을 뿐만 아니라 단명했다.

1985년 미하일 고르바초프의 등장은 소련 사회에 대변혁을 초래했다.

그는 경제침체와 외교적 고립이라는 난제를 해결하기 위해, 대내적으로 페레스트로이카(개혁), 대외적으로는 글라스노스트(개방)라는 실용정책을 펼쳤다.

국내 경제 발전을 위해 국가통제 체제를 완화하는 한편 기업과 지방의 자율권을 확대했고 시장경제제도 도입과 무역 확대를 추진했다.

급기야 소련 인민대표회의는 1990년 2월 27일 막강한 권력을 가진 ‘미국식 대통령제’를 승인했고 고르바초프는 초대 대통령으로 선출됐다.

고르바초프는 국내 개혁을 효율적으로 추진하기 위해 외교적 부담을 줄일 필요가 있었다. 그는 아프가니스탄에서의 철군, 군축회담, 동서독 통일 수락, 동유럽 민주화에 대한 불개입, 미소 정상회담 등을 통한 냉전 종식의 공로로 1990년 노벨 평화상을 수상했다.

고르바초프의 개혁정책은 외교 면에서는 큰 성과를 얻었다. 하지만 국내 정치 및 경제 측면에서는 큰 효과를 보지 못했다. 오히려 연방 내 공화국 간의 갈등과 경제 혼란이 심화됐다.

그는 자유경제와 통제경제라는 상반된 두 체제 사이에서 절충을 모색했지만 소련 경제는 깊은 나락으로 빠져들어 갔다.

고르바초프와 소련의 운명을 결정지은 것은 연방조약안이었다. 조약안은 소련의 국호에서 ‘사회주의’를 삭제하고 각 공화국의 주권을 강화했다. 그러나 이 연방조약안도 소수민족의 독립운동을 잠재우기에는 미흡했다.

게다가 보리스 옐친은 러시아 연방공화국의 권한 확대를 주장하며 연방조약안의 대폭적인 수정을 요구했다.

1991년 12월 8일 벨라루스의 브레스트에서 회동한 옐친과 우크라이나의 레오니트 크라프추크 대통령, 벨라루스의 스타니슬라프 슈스케비치 최고회의 의장은 민스크를 행정수도로 하는 독립국가연합의 결성을 선언해, 연방 해체를 막아보려는 고르바초프의 노력에 쐐기를 박았다.

이어 12월 21일 알마아타(현 알마티)에서는 ‘1992년 1월 1일자로 독립국가연합을 발족시킨다’는 전제하에 그루지야를 제외한 11개 공화국이 협정안에 서명했다. 이오시프 스탈린에 의해 강제로 구성되어 69년 동안 지속되어 왔던 ‘소비에트 사회주의공화국연방’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는 순간이었다.

안영식 기자 ysah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