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퀵서비스 ‘묻지마 배송’에 인터넷 사기 활개

입력 | 2009-02-25 18:45:00


#J씨는 지난달 외식상품권 20여장을 팔려고 인터넷 상품권거래카페에 연락처와 통장 계좌번호를 올렸다가 인터넷 사기에 휘말렸다. 상품권을 사간 K씨가 입금한 돈이 알고 보니 '제3자 사기'로 인한 피해자들의 돈이었던 것. 사연인즉슨, K씨는 있지도 않은 중고냉장고를 판다는 사기성 글을 중고물품거래사이트에 올리면서 J씨의 통장 계좌를 자신의 것인 양 알려줬다. 피해자 3명은 냉장고를 사려고 J씨의 계좌에 돈을 입금했고, 이를 상품권 값이라고 생각한 J씨는 K씨에게 상품권을 전달했다. J씨는 돈을 내고도 냉장고를 받지 못한 피해자 3명의 항의 전화를 받고서야 정황을 파악하게 됐지만 이미 때는 늦었다. K씨가 퀵서비스를 통해 지하철 역 앞에서 상품권을 전달받고 잠적해버렸기 때문이다. J씨는 인터넷 카페에서 강제 탈퇴를 당하는 등 순식간에 사기꾼으로 몰렸다.

# L씨는 지난해 10월 통장 3개를 만들어 집으로 찾아온 퀵서비스 기사를 통해 대출업자에게 전달했다. 급하게 대출을 알아보던 중 대출 거래 내역이 없는 새 통장이 있으면 돈을 빌릴 수 있다는 말을 들었기 때문. 업자의 요구로 주민등록번호와 비밀번호까지 함께 전달했다. 그러나 대출받은 금액은 입금되지 않았고 뒤늦게 자신의 통장이 인터넷 사기에 악용되었다는 것을 알았다. 업자가 유아용품을 판다고 글을 올리고 L씨 명의 통장으로 입금 받은 뒤 돈을 챙겨 사라진 것. 이른바 '대포 통장'(다른 사람의 명의를 도용해 개설된 통장)으로 악용된 것이다. 사기 피해를 본 다른 피해자들은 L씨에게 소송을 걸었다.

● 인터넷 사기, 대포 통장 거래 등 퀵서비스 악용 범죄 심각

인터넷 직거래, 대포전화-대포통장 등 각종 사기 범죄가 '퀵서비스'를 통해 이뤄지고 있지만 단속 근거 규정이 없어 문제가 되고 있다.

'화물자동차운수사업법'상에는 이륜차를 이용한 화물 운송에 대한 규정이 없다. 이 때문에 원칙적으로 퀵서비스의 영업용 오토바이는 불법이다. 그러나 전화 한대, 오토바이 한 대만 있어도 누구나 자유업 사업자 신고를 할 수 있어서 이를 근거로 영세 퀵서비스 업체들이 난립하고 있다. 제도적 허점으로 과당 경쟁이 벌어지다 보니 범죄에 이용될 가능성이 있어도 '묻지마 배송'을 하고 있는 것.

J씨 사건을 수사 중인 인천서부경찰서 사이버수사팀 관계자는 "물품 직거래, 대포통장 거래 등 인터넷 사기 범죄의 90%는 단속이 어려운 퀵서비스를 이용한다"고 말했다. 경찰청 '사이버 범죄 현황'에 따르면 인터넷사기 건수가 2006년 2만 6711건, 2007년 2만 8081명, 2009년 2만 9290명으로 매년 늘어나는 추세다.

● 퀵서비스 '묻지마 배송' 막으려면

국토해양부 집계에 따르면 올해 1월말 기준으로 서울에는 40만 8462대의 이륜차(50cc미만 제외)가, 전국적으로는 181만 4399대의 이륜차가 있다. 서울시에 등록된 약 40만대 중 5% 내외인 약 2만대가 퀵서비스에 이용되는 것으로 추정된다.

유정인 이륜차특송업협회장은 "다방이나 길거리로 배달해달라는 주문은 반(反)사회적 물품의 배달이라는 심증은 가지만 대부분 그대로 배송을 한다"며 "업체간 경쟁이 심해 수익성이 갈수록 악화되다 보니 주문 하나라도 아쉬운 상황"이라고 말했다.

퀵서비스에 대한 법적 근거가 없다 보니 이를 관리 감독할 주무부처도 없는 실정이다. 현재 이륜차는 '도로교통법'에 따라 불법 도로 운행 단속만 할 수 있을 뿐 불법 영업 행위에 대해서는 당국이 방치하고 있는 상태다.

도로교통공단 교통과학연구원 채범석 책임연구원은 "퀵서비스도 택배처럼 배달물품 내용이나 주문자 신원을 확인하도록 해야 하는데 현재 이런 절차가 생략되고 있다"며 "이륜차도 제도를 마련해 등록 조건을 강화하고 물품 보상 보험가입도 의무화해야 '묻지마 배송'이 사라질 것"이라고 제안했다.

우경임 기자 woohah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