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남 천안에 사는 60대 농부 A 씨는 이달 초 국민건강보험공단이 실시하는 건강검진을 받으러 면사무소에 갔다 발걸음을 돌려야 했다. 검진이 취소됐다는 안내문이 붙어 있었기 때문이다. 어이가 없었다.
보건복지가족부와 건보공단이 올해 지역가입자들의 건강검진사업을 갑자기 연기하면서 전국에서 ‘검진 대란’ 조짐이 일고 있다.
복지부는 지난해 12월 31일 건보공단에 ‘건강검진 기준이 확정되지 않아 새해 사업을 연기한다’는 공문을 보냈다. 이에 따라 건보공단도 이달 초 전국의 검진업체에 검진 연기를 통보했다.
그러자 일선 검진업체에는 비상이 걸렸다. 건보공단 건강검진은 2년마다 40세 이상(가구주는 나이에 상관없음) 지역가입자를 대상으로 실시된다. 의료기관이 적은 지방 소도시나 농촌의 경우 검진업체가 해당 지역으로 출장을 가는 게 보통이다.
지방의 한 검진업체 대표는 “이미 검진 대상자들에게 전화를 걸어 1월 검진 예약을 모두 끝냈는데 어떻게 하란 말이냐”며 “고객들의 항의가 엄청나다”고 말했다.
복지부는 “검진 연기 방침을 늦게 통보한 것은 잘못이지만 1차와 2차로 나눠져 있는 검진을 하나로 통합하고 검진항목을 조정하는 등 업그레이드 작업이 길어져 어쩔 수 없었다”고 해명했다.
그러면서 복지부는 출장 검진업체에 화살을 돌렸다. 출장 검진업체가 검진 기준이 확정되기도 전에 ‘영업’을 하는 바람에 혼란이 커졌다는 것이다. 그러나 검진업체들은 업체들대로 “지금까지 아무런 탈 없이 잘해 오고 있는데 왜 관행을 문제 삼느냐”며 불만을 터뜨리고 있다.
복지부와 건보공단, 검진업체가 서로 상대방을 비난하며 싸우고 있는 사이 서민들의 불편은 커져만 가고 있다. 일부 검진업체는 당초 예정된 일정대로 건강검진을 강행하고 있지만 대부분의 서민들은 검진 장소에 가서야 안내문을 보고 허탈하게 돌아서고 있다. 이처럼 ‘고래싸움’에 헛걸음을 하는 서민이 전국적으로 하루 1만∼5만 명이다.
농부 A 씨는 “검진업체는 돈을 벌려고 싸우고, 복지부는 좋은 정책을 만들었다는 소리를 듣기 위해 싸우겠지만 바쁜 일 제쳐두고 달려온 우리는 이게 뭐냐”고 분통을 터뜨렸다. 그렇지 않아도 경제난에 힘들어하는 서민들이다. 헛걸음 하나라도 덜어주려는 정책적 배려가 아쉽다.
김상훈 교육생활부 coreki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