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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갈피 속의 오늘]1969년 남자 고교-대학생 교련 교육

입력 | 2009-01-09 02:58:00


‘독종은 우리에게 교련복 단독군장으로 발목에 모래주머니를 달게 하고 운동장에 집합시켰다. 엎드려뻗쳐가 실시됐다. 그러고는 엉덩이에 빳다를 열 대씩 안겼다.’(김소진의 ‘세월의 무늬’)

‘그 행사를 위해 고등학생들은 매일매일 어두워질 때까지 교련복을 벗을 틈도 없이 학교 운동장에서 살아야 했다. 여학생들도 제식훈련을 연습하느라 뙤약볕 아래 픽픽 쓰러졌다.’(은희경의 ‘마이너리그’)

남자 고교생 및 대학생들에게 교련교육을 실시하기로 결정한 것은 1969년 1월 9일이다(여고생은 1971년부터).

교련이 필수과목으로 채택된 이유는 바로 직전 해인 1968년 북한 특수부대원 31명이 청와대를 습격하려다 1명을 제외하고 전원 사살된 이른바 ‘김신조 사건’이 발생했기 때문이라는 것이 ‘정설’이다.

당시 생포된 김신조는 전국에 생방송된 기자회견에서 남파 목적을 묻자 “박정희의 목을 따러 왔다”고 말했고 위기감을 느낀 박정희 정권은 북한의 비정규전에 대비한다는 명분을 내세워 향토예비군을 창설하고 고등학교와 대학교에 교련과목을 도입했다.

대부분의 남녀 고교생은 교련수업이 있는 날이면 아예 집에서부터 얼룩무늬 교련복을 입고 등교했고 운동장은 총검술 등을 배우느라 하루 종일 기합과 구령 소리가 끊이지 않아 군대 연병장을 방불케 했다.

군복 차림의 교련 교사가 검은색 선글라스를 끼고 근엄한 표정으로 등교시간에 학교 정문에서 두발이나 복장이 불량한 학생들에게 벌을 주는 모습도 흔하게 볼 수 있는 장면이었다.

특히 1980년대 남자 대학생들은 1학년 때 학생중앙군사학교에서 군사훈련을 일주일 받고 2학년 때 최전방 부대에서 전방입소교육을 받았다. 이렇게 교련과목을 이수하면 군 복무기간을 줄여주었다.

그러던 중 대학생 교련은 1989년에 폐지됐다. 고등학교 교련은 1996년에 군사훈련 부문이 없어졌고 2003년 초중등교육법 시행령 개정안에 따라 교련은 선택과목이 되면서 유명무실해졌다. 2012년부터 교과 명칭과 내용이 바뀔 계획이다.

교련과목이 군사문화의 흔적을 털어내고 어떤 이름과 내용으로 새롭게 태어날지 주목된다.

안영식 기자 ysah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