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히 쉴 수 있었으면
2007년 추석 때의 일입니다. 대구에서 나고 자라 서울을 구경할 기회가 없었던 사촌 형수가 명절을 맞아 서울에 올라왔습니다. “청계천을 꼭 보고 싶었다”는 형수의 ‘소원 풀이’를 위해 사촌들이 모두 나들이에 나섰죠.
태어나고 거의 대부분을 서울에서만 살아온 제 눈에도 그날의 청계광장은 무척 호젓하고 여유로워 보였습니다. 형수가 좋은 기억 하나를 더 챙길 수 있었음은 물론이고요.
하지만 사실 청계광장은 그리 여유로운 공간이 아닙니다. 수많은 행사로 몸살 앓기 바쁜 곳이죠. 청계광장을 관리하는 서울시설공단에 따르면 2007년과 지난해 2년 동안 청계광장에서는 총 251건의 행사가 열렸습니다. 일수(日數)로 따지면 504일이네요. 이 중 지방자치단체 행사를 제외해도 459건, 434일 동안 행사가 지속됐습니다.
이들 행사 중에는 문화행사를 빙자한 홍보성 행사나 판매행사도 적지 않았습니다.
지난해 8월 청계광장에서 열렸던 ‘2008 서울 푸드 페스티벌’이 대표적 사례입니다. ‘한식의 우수성과 다양성을 세계에 알리기 위한 행사’라는 것이 주최 의도였지만 실상은 ‘음식 장사’에 가까웠다는 비판이 여기저기서 나왔었죠. 행사장에 마련된 부스에서는 음식을 돈을 받고 파는 데 주력했기 때문입니다.
서울의 대표 광장인 시청 앞 서울광장과 세종로 청계광장은 모두 자동차 도로를 걷어내고 만들어졌습니다. 특히 청계광장은 주말이나 휴일에 청계천에 진입하는 자동차를 통제하기도 합니다. 수많은 자동차에 빼앗긴 공간을 사람들에게 돌려주기 위해서 만들어진 광장이라는 뜻입니다.
그러나 이렇게 어렵게 만든 공간이 다시 이런저런 행사로 점유되는 모습은 다소 씁쓸합니다. 특히나 주최 측에서 시민 참여 없이 일방적으로 진행하는 행사라면 말이죠.
서울시가 추진하는 광화문 광장이 올해 그 위용을 드러낼 예정이라고 합니다. 시 측은 광장 설립 취지를 ‘서민이 모여 상소와 놀이를 하는 열린 광장 역할을 했던 6조 거리를 재현하는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표현 그대로 서울의 대표 광장들이 조직적 행사가 아닌 시민들의 휴식공간으로 남길 바라는 마음이 간절합니다.
이원주 산업부기자 takeoff@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