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학적성시험(LEET)의 논술 영역은 예비 법조인으로서 갖춰야 할 분석적, 종합적 사고력과 논리적 글쓰기 능력을 측정한다. 논술 문제를 통해 응시자의 제시문 및 논제에 대한 분석 능력과 자신의 생각을 언어로 풀어내는 구성 능력을 평가하는 것이다.
논술 영역의 제시문은 인문학, 사회과학, 자연과학 등 다양한 학문 분야에서 선정된다. 제1회 시험을 기준으로 볼 때 문제 유형은 크게 세 가지다.
첫 번째 제시문의 내용을 요약하거나 비교하는 문제, 두 번째 제시문의 내용을 비판 또는 평가하는 문제, 세 번째 제시문의 쟁점 사항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밝히는 문제이다. 제시문의 내용을 정확하게 해석한 뒤 비판하는 두 번째 유형의 문제를 풀어보자.
○ 논제: 제시문 (나)와 (다)를 각각 활용해 제시문 (가)의 “근대 과학 철학의 근본적인 입장”을 비판하시오. (600∼800자)
『(가) 자연의 기계화와 수학적 해석의 논리적 결과로 인해 피상적으로 보이는 자연은 실재(實在) 자연이 아님을 깨닫게 된다. 이런 실재 자연은 수학적이고 규칙적인 것으로 여겨진다. 이러한 사고방식에 의해 근대과학 철학의 근본적인 입장인 ‘명백한 실재는 수학적이고 계량이 가능한 것이며 계량 불가능한 것은 실재할 수 없다’는 주의(主義)가 나타났다.
근본적으로 따져보면 계량이 가능하고 객관적인 조사가 가능해서 모두에게 ‘동일하게 인식되는 객관적인 대상’과 각자의 해석에 따라 다르게 해석되는 ‘주관적인 대상’을 처음으로 구분한 사람은 갈릴레이였다.
그는 냄새나 맛과 같은 감각적이고 가변적인 성질은 육체와 분리된 인간의 의식 속에서만 존재한다고 생각했다. 이 감각적 성질들을 사물의 고유하고 필수적인 속성이라고 할 수 없는데 이는 이들의 존재가 각 개인의 주관에 따라 각각 다르게 판단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가령 사람들은 어떤 것을 본 후에 그 사물을 치워버려도 여전히 그 사물이 특정한 모양 크기 위치 움직임을 가진 것으로 느낀다. 바로 이것이 사물의 속성이 외부로 발현되어 나타나는 ‘제1차 성질(primary qualities)’이다.
그러나 이 이외에 나머지 질료들은 사고의 주체인 인간이 없는 한 계속해서 존재할 수 없다. 이렇게 외연되지 못하고 사라져버리는 것이 ‘제2차 성질(secondary qualities)’이다.
제1차 성질은 측정할 수 있지만 제2차 성질은 측정이 불가능하다. 제1차 성질은 객관적 실체를 갖고 있는 반면 제2차 성질은 주관적이다. 제1차 성질은 고정불변인데 이와 대조적으로 제2차 성질은 진실성이 없는 단순한 의견에 불과하다.
따라서 근대 과학 철학의 관점에서 과학적 이론은 그 이론의 건전함 혹은 현명함과는 전혀 무관하며 다만 그 이론에서 파생된 지식이 얼마나 객관적이고 합리적인가 하는 점에만 달려 있는 것이다. 객관적 지식이 ‘진실’되고 ‘정확’한 반면에 주관적인 지식은 그렇지 못하다고 여겨진다.
[페퍼, ‘현대환경론’]
(나) 전통적인 교육 방법에 대한 비판은 그것이 지나치게 지적 분석과 틀에 박힌 지식의 습득에만 몰두하고 있다는 점이다. 다시 말해 우리는 하나의 사실들을 거기서 나타나는 가치들의 상호 작용 가운데서 구체적으로 이해하려는 습관을 강화시키지 않고 여러 가치들의 그와 같은 상호 작용을 무시하는 추상적인 공식만을 중요시하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유기체가 자신의 환경 속에서 성취하는 무한하고 다양한 살아 있는 가치들을 올바르게 인식하는 일이다. 태양과 대기와 지구의 자전에 관한 모든 것을 이해하고 있으면서도 저녁노을의 광휘와 아름다움은 간파하지 못할 수 있다.
사물의 구체적인 성립 형태를 단적으로 간파하는 일이란 다른 대안으로 대치될 수 있는 성격의 것이 아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삶과 관련된 구체적 사실, 그 자체의 가치를 환히 밝혀주는 빛을 지닌 구체적인 사실인 것이다.
문명사회의 미적 요구에 대해 과학이 끼친 영향은 지금까지 불행스러운 것이었다. 과학의 유물주의적 기반은 가치에 대립되는 사물에만 주목해 왔다. 이 대립은 구체적인 지평에서 보자면 잘못된 것이다. 그러나 일상적인 사유의 추상적 지평에서 본다면 타당한 것이다.
이처럼 사물에만 주목하는 그릇된 관점이 경제학의 추상 관념들과 결합하게 되었는데 사실 이들 추상 관념은 상업상의 업무를 수행할 때 사용되는 추상 관념이었다. 그래서 사회 조직에 관련된 모든 사상은 물질적 사물과 자본이라는 것에 의해 표현되었다.
궁극적인 가치는 거기에서 제외되었다. 사람들은 그러한 가치들에 정중하게 예의를 표하고 나서 그것들을 성직자에게 넘겨줌으로써 일요일에만 문안 인사를 하는 정도로 끝냈다.
[화이트헤드, ‘과학과 근대세계’]
(다) 과학적 방법의 초석은 자연은 객관적이라는 것을 전제로 하고 있다. 달리 말하면 참 지식은 최종 원인, 즉 목적이라는 관점에서 현상을 해석함으로써 비로소 얻어질 수 있다는 생각을 체계적으로 부인하는 일이다.
이 원리가 발견된 정확한 날짜를 우리는 말할 수 있다. 갈릴레이나 데카르트에 의해서 정식화된 관성의 법칙은 단순히 역학의 기초가 되었을 뿐만 아니라 아리스토텔레스적인 물리학과 우주론을 뒤엎음으로써 현대과학의 인식론의 기초도 구축했던 것이다.
확실히 데카르트 이전의 학자들이 이성이나 논리, 관찰이나 체계적인 대결을 시도하려는 생각을 무시했던 것은 결코 아니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가 이해하고 있는 과학은 그와 같은 기초만을 가지고는 발전이 불가능했다.
객관성이라는 전제 안에 숨어 있는 굽힐 줄 모르는 비판이 필요했다. 그러나 이 객관성이란 전제는 영원히 논증이 불가능한 극히 순수한 것이다. 왜냐하면 자연의 어느 구석에도 목적이나 의도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증명할 수 있는 실험은 전혀 상상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모노, ‘우연과 필연’]』
○ 해설
근대 과학 철학의 근본적 입장을 비판하라는 논제다. 어떤 견해의 취약점, 한계와 결격 사항, 오류 등을 지적하고 그 문제점을 밝히는 방식으로 글을 전개해 나가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비판하고자 하는 주장에 대한 치밀한 분석과 약점을 파악하는 작업이 선행돼야 한다.
먼저 근대 과학 철학의 입장이 무엇인지 정확히 파악해야 한다. 그 다음엔 근대 과학 철학의 입장에서 문제가 되는 영역이 무엇인지를 명확히 규명해야 한다. 제시문 (가)는 근대 과학의 연구 대상과 연구 결과의 성격에 논의의 초점이 맞춰져 있다.
근대 과학 철학이 상정한 연구 대상과 지식의 성질을 비판하되 논제에 제시문 (나)와 (다)를 활용하라는 조건을 제시돼 있으므로 비판의 주된 논점을 두 제시문의 내용을 참고해 국한할 필요가 있다. 또한 두 제시문을 토대로 비판의 근거와 이유를 확보해야 한다.
이와 같은 방법론에 입각해 논점을 간추려 보면 다음과 같다. 근대 과학 철학의 근본적인 입장은 과학적인 연구의 대상이란 인식 주체와 상관없이 고정불변의 성질을 지닌 대상이어야 한다. 또 그러한 대상에 대한 연구 결과로서의 객관적 지식만이 ‘참’이 된다.
먼저 제시문 (다)를 활용해 근대 과학이 설정한 연구 대상의 객관성이 의심스럽고 증명 불가능한 것이라는 점을 비판할 수 있다.
다음으로 제시문 (나)를 토대로 근대 과학이 인간에게 물리적 힘과 경제적, 상업적 관념만을 증대시켜 우리 삶의 질을 높일 수 있는 심미적, 종교적 가치 등을 배제했음을 비판할 수 있다. 과학 지식을 신봉하는 현대인들은 유물론적인 측면만을 주목함으로써 인간의 물화와 정신적 황폐화 같은 문제에 직면하게 된 것이다.
이 문제는 근대 과학의 기본적인 원리와 철학에 대한 정보를 확인하고 그것의 한계와 맹점을 비판적으로 고찰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지를 평가하기 위한 것이다. 제시문을 정확하게 해석하고 논제에 주어진 조건에 맞춰 글을 쓰는 연습을 통해 논술 시험에 대비해야 한다.
조순 PLS 논술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