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있는 여의도서 주로 개최…여당이 우위?
논리-정보력에선 아무래도…정부가 우위?
1963년 첫 도입… 다른 대통령제에선 드물어
DJ정부때 강화… 盧정부선 당-정 분리로 약화
지난달 중순 한나라당 정책위원회 소속 A 의원은 지인들과 저녁식사를 하다 말고 급하게 여의도로 향했다. 그는 “정부를 막을 사람이 나밖에 없다”며 “이 상태로 종합부동산세제 개편안이 발표되면 당이 견뎌내질 못한다”고 양해를 구했다. A 의원의 제지 때문인지 개편안 발표는 “당정 간 합의가 안 됐다”는 이유로 3일가량 미뤄졌다.
새 정부 출범 이후 당정협의가 주요 정책을 제조하는 ‘공장’ 역할을 하고 있다. 정부가 운을 뗀 정책 중에서 당과 깊숙이 논의되지 않은 사안은 아이디어 수준으로 전락되기도 한다.
▽정책 발표의 막전막후=당정협의 과정에서 정책의 큰 틀이 180도 바뀌는 경우는 많지 않다. 정책의 시기나 예외규정 같은 다소 자잘한 문제들이 걸러진다. 하지만 당과 정부의 이견이 해소되지 못하면 힘겨루기로 변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
종부세 개편안은 당초 장기 주택보유자에 대한 감세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그러나 정부가 뒤늦게 과세기준을 6억 원에서 9억 원으로 높이자고 했다. 여당은 “세율만 조정하면 된다”고 했지만 결국 정부 안대로 발표됐다. 여당은 개편안을 원안대로 국회에 상정하되 법안 심사 과정에서 보완하는 쪽으로 체면을 살렸다.
대운하 사업은 당이 정부를 설득한 사례다. 청와대와 정부의 추진 의지가 강했지만 여론을 고려해야 한다는 당의 설득이 먹혀들었다.
이와 달리 일부 생활필수품에 대한 부가가치세 환급 방안은 당이 제안했지만 정부가 난색을 보여 없던 일이 됐다.
▽절충과 견제의 불안정성=1963년 도입된 당정협의는 국회가 행정부의 정책 수립에 직접 관여하는 제도다. 대통령제를 채택하고 있는 다른 나라에서는 찾기 어렵다.
김대중 정부에서는 부처별 당정협의회까지 만들어 행정부 견제를 강화했다.
노무현 정부 때는 당-정-청 분리를 고수했기 때문에 당정협의의 중요성이 상대적으로 떨어졌다. 하지만 각종 위원회를 청와대 아래에 두고 관료들을 통제했다.
현 정부에서는 각 분야의 여당 정책조정위원장과 정부의 국장급 혹은 차관급이 참석하는 실무 당정협의에서 핵심 사안을 정리한 뒤 정책위의장과 부처 장관이 참석하는 고위 당정협의에서 이를 추인하고 있다.
실무 당정협의는 국회에서 수시로 열리며 고위 당정협의는 정책 발표 하루 전이나 당일 아침 서울 여의도 렉싱턴호텔에서 주로 개최된다.
국회가 있는 여의도에서 고위 당정협의가 열린다는 것은 당의 우위를 간접적으로 시사한다. 하지만 실제로는 사안별로 당과 정부가 엎치락뒤치락한다. 그럼에도 과거와 크게 바뀌지 않는 점이 있다면 논리와 정보에서 당이 정부를 앞서기 어렵다는 것이다.
한나라당 정책위 관계자는 “종종 당의 정책역량이 이 정도밖에 안 되느냐는 느낌을 받는다”며 “명분에서 앞서도 각론에서 밀리면 정부를 설득하기 쉽지 않다”고 털어놨다.
다른 관계자는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대통령의 의중이 어디에 실려 있느냐는 것”이라며 “당과 대통령의 관계, 정부에 대한 대통령의 신뢰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는 게 당정협의”라고 설명했다.
고기정 기자 koh@donga.com
길진균 기자 leo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