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발(發) 금융위기에 따른 국내 외환시장 동요가 끝이 안 보인다. 어제 원-달러 환율은 한때 달러당 1350원까지 치솟았다가 전날보다 61원 오른 1328원에 거래를 마쳤다. 3거래일 사이에 140원이나 뛰어 시장이 패닉(심리적 공황)에 빠졌다. 그런데도 어제 청와대 거시정책협의회에서는 “외환 유동성 문제는 충분히 대처할 수 있는 상황”이라고 정리했다. 시장의 동요를 의식해서였겠지만 이런 말만으로 국민의 걱정을 덜어줄 수 있을지 모르겠다.
외환시장의 달러화 수급상황을 추적해보면 환율 상승세는 피할 수 없었다. 외국인은 올해 들어 33조 원(약 250억 달러)의 국내주식을 순매도했다. 무역수지는 9월 말까지 142억 달러 적자였고 국내 기업과 금융기관들이 해외에서 발행한 외화채권은 작년 같은 기간의 63%에 불과한 99억 달러에 그쳤다. 자동차 조선 등 수출업체는 수출로 벌어들인 달러를 은행에 팔지 않고 쌓아두었다. 국내외 증시가 폭락하면서 달러화에 대한 수요는 커져만 갔다.
이런 수급 변수들을 정부라고 몰랐을 리 없다. 그런데도 시장에서 패닉 상황이 빚어진 것은 정부가 적절한 대응에 실패한 탓이 크다. 시장을 상대로 한 정부의 심리전도 수준 이하였다. 강만수 기획재정부 장관이 그제 은행장 회의를 소집해 달러화 조기 매각을 요구한 것이 그런 사례다. 강 장관의 발언은 시장에 달러화 공급이 확대될 것이란 믿음을 주기보다는 ‘국내 달러 수급에 문제가 심각한 모양’이라는 판단을 낳게 해 달러 매수세를 부추겼다.
‘세계 파산(worldwide wreckage)’이라는 말이 나올 만큼 금융위기가 번지고 있고, 달러 부족도 세계적 현상이어서 우리만 피해갈 수는 없다. 그런데도 환율 폭등은 우리가 유독 심하게 겪고 있다. 이제라도 외환·금융위기의 실물부문 이전과 확산을 막는 일이 급하다. 한국개발연구원(KDI)도 어제 “국내 경기 둔화세가 심화되고 있다”고 경고했다. 기업들은 달러 품귀뿐 아니라 은행이 돈줄을 죔에 따라 원화 자금난도 겪고 있다. 위기를 헤쳐 갈 정부의 리더십이 절실하다. 정부와 한국은행의 세련되지 못한 시장개입 정도로는 곤란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