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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권]“먹골배 특유의 애틋한 맛엔 단종의 슬픈사연이…”

입력 | 2008-10-03 02:58:00

중랑구에서 ‘먹골배’의 명맥을 잇고 있는 최광일 씨가 올해 재배한 배를 내보이며 미소 짓고 있다. 30여 년간 배 농사를 지어 온 그는 “먹골배는 색보다는 맛”이라고 강조했다. 김미옥 기자


■ 30년간 배농사 ‘중랑구 토박이’ 최광일 씨

“갈수록 배밭 줄어 아쉽지만 명맥 이을 것”

1일 찾아간 중랑구의 망우동과 신내동 일원의 ‘먹골배’ 과수원. 중랑구청에서 차로 불과 15분여 거리인데도 서울이라고는 믿어지지 않는 풍경이 펼쳐졌다. 빼곡히 들어선 배나무에 수확을 앞둔 배들이 주렁주렁 매달려 주인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는 것.

사방이 실하게 여문 배들이라 혹여 머리를 부딪힐까 지나다니기도 조심스러웠다. 갓 딴 배 하나를 들어봤더니 한손으로 들기엔 제법 묵직했다.

○ “먹골배 특유의 맛이 있지요”

중랑구에서 태어나 30여 년간 배 농사를 지으며 ‘먹골배’의 명맥을 잇고 있는 최광일(61) 씨. 배를 따는 손놀림이나 익숙하게 운반차를 운전하는 모습에서 그의 농사 경륜이 한눈에 느껴졌다.

“나주배, 안성배도 좋은 배지만 먹골배만의 특징이 있어요. 기름진 황토에서 자라다 보니 색보다는 맛이 특히 좋지요.”

먹골배는 농협으로 출하돼 대부분 이 지역에서 소비된다. 하지만 지명도 덕분에 제주도에서 주문을 하는 손님, 한 번 먹어보고 그 맛을 잊지 못해 과수원으로 전화를 걸어오는 손님도 많다고 최 씨는 자랑했다. 올해 배 농사는 평년작 수준이란다.

“그해 농사가 잘됐느냐 안됐느냐는 보통 7.5kg들이 상자에 배가 몇 개 들어가느냐로 따지는데 올해는 10개 미만인 상자가 60∼70%는 되니 괜찮은 편이지요. 올해 추석이 너무 일러서 대목은 놓쳤지만요.”

그는 한때 묵동을 비롯한 중랑구 곳곳에 펼쳐져 있던 배 밭이 갈수록 줄어드는 게 아쉽다고 한다.

“언젠가는 이곳을 떠나야 할지도 모르지만 다른 데 가더라도 배 농사를 하고 싶어요.”

배 농사에 대한 애정을 풀어놓던 최 씨는 미소를 지으며 기자에게 방금 딴 배를 깎아 한 조각 건넸다. 달면서도 애틋한 맛을 가졌다는 먹골배의 명성처럼 혀끝에는 오랫동안 여운이 남았다.

○ 단종과 왕방연이 담긴 먹골배

먹골이라는 이름은 묵동의 옛 이름인 먹골에서 유래됐다.

먹골배의 유래는 조선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곳에서 처음 배나무를 키운 사람은 15세기 문신 왕방연(王邦衍).

단종이 삼촌에게 왕위를 빼앗기고 강원도 영월로 귀양 갈 때 호송을 책임졌던 왕방연은 갈증을 호소하던 단종에게 물 한 그릇 올리지 못한 게 한이 돼 관직을 그만두고 중랑천 옆 먹골에서 배나무를 가꾸며 살았다.

그 배나무가 번식해 이 일대가 배 밭으로 변했고 이후 먹골배는 이 지역의 배를 통칭하게 됐다.

먹골의 이름은 한자화해 묵동으로 바뀌었지만 먹골배의 명맥은 이어지고 있다. 망우동, 면목동 및 신내동의 34만2000여 m²에서는 지금도 당도가 높고 오랫동안 저장할 수 있는 품종인 ‘신고배’가 생산된다. 현재 배 농사를 전업으로 하는 농가는 34가구 정도.

중랑구는 특산물 먹골배의 맛을 알리고 지키기 위해 1999년부터 주말농장을 열어 원하는 주민들에게 배나무를 분양하고 있다.

장윤정 기자 yunj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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