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트렌드 생활정보 International edition 매체

[초대석]인촌상 자연과학부문 수상 국양 서울대 물리학부 교수

입력 | 2008-09-23 02:59:00

인촌상 자연과학부문 수상자로 선정된 국양 서울대 물리학부 교수는 “세계적인 경쟁력을 가진 인재를 필요한 분야에서 5, 6명씩 확보할 수 있다면 우리도 세계 를 선도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동아일보 자료 사진


“전 아직도 다른 사람들을 흉내 내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앞으로는 정말 아무도 가보지 못한 길, 과학의 범주 안에서 가장 어렵고, 힘든 일을 찾아 하고 싶습니다.”

제22회 인촌상(자연과학 부문) 수상자로 선정된 국양(55) 서울대 물리학부 교수는 e메일과 국제전화 통화에서 남은 정년까지 새로운 연구를 해보고 싶다는 뜻을 여러 차례 밝혔다.

이번 수상에 대해서도 “항상 옳은 일과 나라를 생각하시던 인촌 선생을 기리는 상이라 부담스럽다”면서도 “그동안 걸어온 노력에 대한 칭찬과 함께 ‘앞으로는 걷지 말고 뛰라’는 지시를 받은 느낌”이라며 각오를 다졌다.

국 교수는 안식년을 맞아 최근 미국 메릴랜드 주 표준과학연구원에 머물며 새로운 연구 주제를 찾고 있다. 서울대 물리학과를 졸업한 그는 1981년 미국 펜실베이니아주립대에서 물리학 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벨연구소를 거쳐 1991년부터 서울대 강단에 섰다.

―후학들에게도 ‘창의성’을 강조한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영어로 학자를 ‘북 스마트(book smart)’한 사람(교과서적인 연구를 하는 사람)과 ‘스트리트 스마트(street smart)’한 사람(융통성 있는 연구를 하는 사람)으로 나눕니다. 창의성은 주로 후자에서 나옵니다. 남과 비슷한 연구를 하는 것은 이제 가치가 떨어집니다. 제 학생들에게도 자유롭게 생각할 것을 요구합니다. 일주일 내내 실험실에만 있으면 좋은 생각이 나질 않습니다. 자기가 다니지 않는 길로 가거나, 자기 전공과 전혀 상관없는 강연을 듣거나, 머리를 쉬어줄 때 비로소 창의적인 생각이 납니다. 과학은 남이 해보지 않은 아주 창의적인 일을 발견, 발명할 때 느끼는 희열 때문에 하는 겁니다.”

국 교수는 원자와 분자를 자유롭게 다루는 ‘나노 과학’의 선구자로 꼽힌다. 평소 자신을 잘 드러내지 않는 그도 “세계에서 나노 과학을 먼저 한 순서로 치면 (제가) 다섯 손가락 안에 들 것”이라며 자부심을 보였다.

―어떻게 나노 과학을 시작하게 되었습니까.

“나노 과학은 1980년 전에는 없던 분야입니다. 1981년 ‘주사형 터널링 현미경’이 발명되면서 원자를 직접 볼 수 있게 됐고 원자 하나하나를 모으고 조작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저는 1983년 벨연구소에서 이 현미경을 만드는 데 도전했습니다. 첫 발명자인 하인리히 로러 박사가 벨연구소를 방문했을 때 한 시간 상의한 게 전부였습니다. 로러 박사는 구체적인 내용은 철저히 감추더군요. 혼자 낑낑거리며 고생하다 1984년 4월 22일 밤에 처음 원자를 봤습니다. 그날 함께 일하던 폴 실버먼이라는 기술자와 밖에 나가 신나게 맥주를 마셨습니다.”

지금까지 141편의 논문을 쓴 국 교수는 ‘다작(多作) 과학자’라는 평을 듣는다. 논문 인용횟수도 총 2800회를 넘는 세계적인 실험물리학자다. 25년 동안 금속 표면 위의 흡착현상 관측, 1차원 나노선의 양자화 연구 등 굵직한 업적을 내놓으며 2006년 정부에서 ‘국가석학’으로 선정됐다. 그는 자신의 실험실을 “나노 측정 분야에서는 세계 10대 연구실로 인정받고 있다”고 자랑했다.

―나노 과학이 많은 기대를 받고 있는데 미래는 어떨지요.

“모든 물체를 원자로부터 조립해 갈 수 있다는 확신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재료, 기계, 전자전기공학, 생명과학, 의과학, 약학 등에서 혁명적인 변화가 올 것입니다. 어떤 이는 심지어 원자로부터 DNA를 조립하고 나아가 생명체도 조립할 수 있다고 예측합니다. 하지만 재료기술, 생명과학, 제약은 단기간에 큰 변화가 오겠지만 새로운 소자를 개발해 전자공학의 패러다임을 바꾸는 연구는 시간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신기술 개발과 함께 환경, 인체의 유해성 문제도 고민해야 합니다.”

―어떻게 과학자의 길을 걷게 됐습니까.

“저는 평범한 학생이었습니다. 고등학생이 되면서 막연하게나마 의사나 검사 같은 안정된 직업보다는 노력하기에 따라 세계적으로 훌륭한 사람이 될 수 있는 분야에 도전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고교 2학년 때 물리 선생님으로부터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을 배우면서 그저 물리학이 멋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 후 지금은 정년퇴직하신 권숙일 서울대 명예교수께서 저희 학교를 방문해 물리학을 소개해 주셨는데 그 말씀에 완전히 빠져 물리학과를 지원했습니다.”

그는 물리학의 재미에 대해 “유학 시절 매일 밤 12시까지 실험에 매달리다 어느 날 밤 ‘세상에서 이런 실험 결과는 나만 보고 있겠구나’ 하고 느꼈다”며 “그 순간 물리학 하기 정말 잘했다는 희열에 빠졌다”고 말했다. 국 교수는 “1981년 IBM이 최초로 PC를 내놓았을 때 미국의 한 상점에서 주인 몰래 PC를 뜯어보기도 했다”며 “물리학자는 세상을 분석적으로 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우리나라의 과학기술이 발전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지금까지 선진국을 따라가기 위해 발 벗고 연구했다면 이제는 우리만 잘하는 영역을 발굴해야 합니다. 세계적인 경쟁력을 가진 인재를 꼭 필요한 분야에서 5, 6명씩 확보할 수 있다면 우리도 세계를 선도할 수 있습니다.”

국 교수는 청소년들이 이공계를 기피하는 경향에 대해서는 “세계 어느 나라나 있는 현상”이라며 “우수한 과학자에게 스타 운동선수 못지않은 금전적 보상을 주는 것도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김상연 동아사이언스 기자 dream@donga.com

○ 국양 교수

△1953년 서울 출생

△경기고, 서울대 물리학과(학사, 석사), 미국 펜실베이니아주립대 물리학과(박사) 졸업

△1981∼1991년 미국 벨연구소 연구원

△1991년∼ 서울대 물리학부 교수

△2002년∼ 영국 ‘나노테크놀로지’ 편집위원

△2002년∼ 과학기술위원회 나노전문위원

△네이처 등 국내외 학술지에 연구논문 141편 발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