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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정적 한방… ‘4번 타자 이승엽’ 부진도 부담도 날렸다

입력 | 2008-08-23 03:12:00

“넘겼다” ‘일본전 8회 결승타의 사나이’ 이승엽이 또 해냈다. 22일 열린 베이징 올림픽 일본과의 준결승에서 2-2 동점인 8회말 역전 2점 홈런을 날린 이승엽이 두 팔을 번쩍 치켜들며 환호하고 있다. 베이징=올림픽사진공동취재단


■ 역전 홈런 이승엽

시드니-WBC 이어 일본 울린 ‘8회의 사나이’

“후배-감독님 볼 낯 없었는데 조금은 빚 갚아”

이승엽(요미우리)은 2000년 시드니 올림픽과 2006년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에서 일본 킬러였다.

시드니 올림픽 예선에선 당시 세이부의 ‘괴물 투수’ 마쓰자카 다이스케(보스턴)를 상대로 1회 2점 홈런을 날리며 연장 10회 한국의 7-6 승리를 이끌었다. 동메달 결정전에선 앞선 3타석에서 연속 삼진을 당했지만 0-0으로 맞선 8회 2사 2, 3루에서 다시 한 번 마쓰자카를 상대로 좌중간 결승 2타점 2루타를 날렸다. 2006년 WBC에서도 이승엽의 방망이는 일본을 강타했다. 도쿄돔에서 열린 WBC 지역 예선에서 1-2로 뒤진 8회 역전 2점 홈런을 쏘아 올렸다.

그리고 2년 후 이승엽은 다시 일본을 울렸다. 그는 22일 베이징 올림픽 일본과의 준결승전에서 대회 첫 홈런을 꿈같은 결승 2점포로 장식했다. 타격 밸런스를 잃은 채 헛방망이질을 연발하던 그는 역시 승부사였다.

홈런을 친 뒤 이승엽은 1루를 돌며 두 팔을 번쩍 들어 환호했다. 이제야 자신의 몫을 해냈다는 표정이었다.

“그동안 너무 부진해 후배들을 볼 낯이 없었어요. 저를 믿어준 김경문 감독님과 후배들에게 조금은 빚을 갚은 심정입니다.”

이승엽은 홈런을 친 순간 “아무 생각이 없었다”며 “이날 홈런도 1루와 2루 사이로 안타를 치겠다는 생각이었는데 운이 좋았다”고 말했다. “일본 프로야구에서 이와세의 공을 잘 못 쳤어요. 그래서 직구 하나만 노렸죠. 다섯 번째 공이 직구여서 방망이를 휘둘렀는데 처음에는 홈런인지도 몰랐죠.”

이승엽에게 올해는 고난의 연속이었다. 시즌 초 극심한 타격 부진으로 2군에 내려가 3개월여 만에 복귀했다. 홈런을 한 방 치긴 했지만 여전히 정상 컨디션이 아니다. 지난해 10월 수술한 왼손 엄지 때문이다. 타격을 할 때 왼손 엄지는 아직도 통증을 느낀다. 고무 링을 엄지에 끼지만 제대로 힘을 싣기 어렵다. 그러나 이승엽은 대표팀 합류를 자원했다. 마지막이 될지도 모를 올림픽 메달과 병역 문제로 고민하는 후배들에게 힘을 실어주기 위해서였다.

이승엽은 일본을 꺾은 뒤 이용규 등 후배들이 감격의 눈물을 흘리는 모습을 보며 함께 눈시울을 적셨다. “드디어 결승에 갔구나 하는 생각에 가슴이 뭉클했어요. 후배들이 정말 큰일을 해낸 거죠.”

이승엽은 동료들과 어깨를 두드리고 주먹을 맞대며 일본전 승리를 자축했다. 이승엽의 모자 안창에 그가 직접 쓴 글자가 눈에 확 들어왔다. ‘금. 메. 달!’

베이징=황태훈 기자 beetlez@donga.com


▲영상 취재 : 베이징=동아일보 황태훈 기자


▲영상 취재 : 사진=올림픽사진공동취재단

■ 승리 투수 김광현

8회까지 2실점 쾌투… ‘新 일본킬러’

“앞으로 일본전에 나가면 부담스러울 것 같네요.” 한국 야구대표팀의 ‘영건’ 김광현(20·SK·사진)은 ‘부담’이라는 단어를 말했지만 얼굴 가득 미소가 가득했다. 일본을 다시 만나도 ‘자신 있다’는 여유까지 느껴졌다. 김광현이 ‘일본 킬러’로 확실히 자리 잡았다.

대표팀 막내 김광현은 22일 일본과의 베이징 올림픽 준결승에서 선발로 나와 승리를 따냈다. 8이닝 동안 삼진 5개를 솎아내며 6안타 2실점(1자책)한 쾌투였다.

일본으로서는 김광현은 일찍부터 두려운 존재였다. 안산공고 시절인 2005년 아시아 청소년야구선수권에서 일본을 상대로 5이닝 노히트노런 피칭을 선보여 한국에 ‘괴물 신인’이 있음을 알렸다.

프로에 온 뒤 일본 주니치와의 지난해 코나미컵 아시아 시리즈에서도 호투한 김광현은 이번 대회 풀리그 일본전에서도 5와 3분의 1이닝 동안 삼진 7개 3안타 1실점하며 승리의 디딤돌을 놓았다.

약관의 투수가 감당하기엔 벅찬 올림픽 준결승, 더군다나 한일전이었지만 김광현의 뱃심은 두둑했다. 시속 150km에 달하는 직구에 커브, 슬라이더를 적절히 섞어가며 일본 타자를 여유 있게 요리했다. 김광현은 “예선 때와 달리 타자들의 타이밍을 뺏는 투구로 패턴을 바꾼 게 먹혀들었다”며 활짝 웃었다.

베이징=황인찬 기자 hic@donga.com


▲영상 취재 : 베이징=동아일보 황태훈 기자

■ 동점 대타 이진영

“주눅들던 시대 지났다” 日 구원왕 격침

2006년 3월 5일 일본 도쿄돔에서 열린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예선라운드 3차전 한국과 일본의 경기. 0-2로 끌려가던 한국은 4회 2사 만루의 위기를 맞았다. 불펜이 막강한 일본에 추가 점수를 내준다는 것은 곧 패배를 의미했다. 니시오카 쓰요시가 친 타구는 우익선상으로 빠르게 뻗어갔다. 하지만 공은 개구리처럼 몸을 날린 이진영(사진)의 글러브로 빨려 들어갔다. 실점은 없었고 한국은 8회 이승엽의 홈런이 터져 3-2로 이겼다.

당시 일본과의 두 번째 경기에서도 총알 같은 홈 송구로 승리를 지킨 이진영에게는 ‘국민 우익수’라는 별명이 붙었다. ‘일본 킬러’ 이진영이 다시 일본을 울렸다. 이번에는 수비가 아닌 방망이였다.

이진영은 1-2로 뒤진 7회 2사 1, 2루에서 유격수 박진만 대신 타석에 섰다. 이진영은 볼카운트 2스트라이크 2볼에서 일본 프로야구 구원왕인 후지카와 규지(한신)의 6구째 포크볼을 때려 깨끗하게 오른쪽 외야로 보냈다. 끌려가던 한국을 단숨에 제자리로 돌려놓는 한 방이었다.

이진영은 “후지카와와 처음 대결했지만 정말 괜찮은 투수였다. 하지만 한국 타자가 일본 투수들의 강속구나 변화구에 주눅 들던 시대는 이미 지났다”고 말했다.

베이징=이승건 기자 why@donga.com

■ 철벽 뒷문 윤석민

대리 출전 설움 이기고 ‘석민 불패’ 행진

윤석민(22·KIA·사진)은 경기 후 벤치에 앉아 눈물을 흘렀다. 오른쪽 어깨에 얼음찜질을 하는 와중에도 그는 연방 흐르는 눈물을 훔쳤다. 그간의 회한이 머릿속에 스치는 듯했다.

윤석민은 지난달 14일 발표된 대표팀 최종 명단에 빠져 있었다. 다승 선두(12승)를 달리는 그가 빠지자 논란이 거세졌지만 가장 안타까운 것은 역시 본인이었다. 김경문 대표팀 감독이 ‘언더핸드 투수’에 관심을 보이자 오른손 정통파 투수인 윤석민은 “언더핸드로도 던지겠다. 불펜도 좋다”며 대표팀 합류를 간절히 원했다.

결국 윤석민은 부진한 임태훈(20·두산) 대신 막차로 대표팀에 올라 베이징 올림픽에 출전했다. 간절히 바랐던 만큼 윤석민은 ‘마당쇠 역할’을 자처했다. 선발 투수로 활약하던 그였지만 대표팀에서는 중간 계투와 마무리를 오가며 소방수 역할을 충실히 했다.

앞서 풀리그 4경기에 출전해 2승 1세이브를 거둔 윤석민은 22일 일본과의 준결승전에서도 9회에 나와 삼자범퇴로 경기를 깔끔히 마무리하며 결승행을 확정지었다. ‘석민 불패’가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모자챙 안쪽에 시상대와 금메달 그림을 그려놓은 윤석민이 진짜 금메달을 목에 걸 수 있을지 기대된다.

베이징=황인찬 기자 hic@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