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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횡설수설/방형남]‘미국의 선물’

입력 | 2008-08-23 03:02:00


북한 외무성은 한미합동 군사연습 을지프리덤가디언(UFG)을 사흘 전 맹렬하게 비난하고 나섰다. 외무성 대변인은 “미국과 남조선 괴뢰당국이 추구하는 대(對)조선 적대시 정책과 북남 대결정책의 명백한 증거”라고 주장했다. 그에 앞서 북한 군부도 “우리를 군사적으로 압살해보려는 미국의 교활한 술책에 단호한 반격을 가할 것”이라며 독설을 퍼부었다. 미국의 테러지원국 명단에서 삭제될 가능성이 열리긴 했지만 북한은 여전히 미국을 적국(敵國)으로 간주하고 있다.

▷그런 북한이 미국의 옥수수가 주민들에게 전달되는 모든 분배 장소에 ‘미국에서 보내온 선물’이라는 한글 글귀가 새겨진 식량 자루 두 개를 세워놓기로 합의했다고 미국의 소리 방송이 어제 전했다. 주민들에게 미국이 원수가 아니라 고마운 나라라고 알리겠다는 것이다. 미국이 보낸 식량은 세계식량계획(WFP)과 미 비정부기구(NGO)를 통해 북한의 148개 군(郡) 가운데 131개 군에서 분배된다. 사실상 북한 전역에 ‘미국의 선물’이 배포된다는 얘기다. 북한 주민들이 비난에만 익숙하던 미국에 대해 어떤 생각을 하며 식량을 받을지 궁금하다.

▷미국은 5월 북한에 50만 t의 식량을 지원하겠다고 약속한 후 지금까지 옥수수 9만3000t을 보냈다. 북한은 식량 지원을 수용하면서 이례적으로 많은 양보를 했다. 미국은 식량이 굶주리는 주민에게 전달되는 것을 확인하기 위해 59명의 감시요원 파견을 요구해 관철시켰다. 미 NGO가 북한에 보낸 16명의 감시요원 중에는 우리말을 하는 한국계 미국인이 3명이나 포함됐다. WFP도 식량 분배를 철저히 감시하기 위해 4개 지역에 사무소를 신설했다.

▷북한이 그만큼 심각한 식량난을 겪고 있다는 증거다. 마침 WFP가 우리 정부에 옥수수 15만 t에 해당하는 6000만 달러의 지원을 요청했다. 굶주리는 북녘 동포에게 반드시 전달이 된다면 WFP를 통한 간접 지원이라 해도 적극적으로 동참할 필요가 있다. 북한에 직접 식량을 보내려는 정부의 계획에 차질이 빚어진다고 아쉬워할 까닭도 없다. ‘남한의 선물’이라는 꼬리표를 달지 못해도 많은 북한 주민을 구할 수 있다면 인도적 차원에서 WFP 요청을 수용해야 한다.

방형남 논설위원 hnbha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