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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일/패션]당당하고 섹시하게! 대세는 핀업걸

입력 | 2008-08-22 03:01:00


《“오늘은 또 어떤 옷을 입어야 할지 고민 고민 하지마 걸∼.” 2년 5개월 만에 컴백한 가수 이효리는 새 앨범 타이틀곡 ‘유-고-걸’의 뮤직비디오를 공개하자마자 표절 논란에 휩싸였다. 핫팬츠에 알록달록한 셔츠를 입은 모습, 진한 화장을 하고 간호사 복장을 한 장면, 그리고 미인을 바라보며 군침을 삼키는 마린룩의 남자들까지 팝스타 크리스티나 아길레라의 ‘캔디 맨’과 비슷하다는 의혹을 받은 것이다. 이에 이효리의 소속사는 ‘핀업걸(Pin-Up Girl)’ 얘기를 꺼내며 해명에 나섰다. 단발이 아닌 긴 머리, 형광빛의 ‘일렉트로닉’ 패션이 아닌 볼륨감 있는 과거지향적 스타일…. 1집 ‘텐 미닛’의 밀리터리 힙합 스타일, 2집 ‘겟챠’의 중세 백작 이미지에 이어 세 번째 주제는 복고풍 핀업걸이라는 것. 이효리의 스타일리스트인 정보윤 씨는 “영화 ‘그리고 신은 여자를 창조했다’ 속 배우 브리지트 바르도의 모습에서 영감을 얻었다”고 말했다. 의혹은 컴백과 동시에 관심으로 바뀌었다. 반응은 즉각적이었다. 인터넷 쇼핑몰 G마켓에서는 체크 리본 셔츠, 핫팬츠 등 ‘이효리 핀업걸’ 관련 아이템이 1075개나 쏟아지며 7월 마지막 주 판매량이 4500건이 넘었다. 이는 전달보다 300%나 증가한 수치다. 그래서 그녀들은 말한다. 2008년 8월, 대세는 핀. 업. 걸 이라고!》

새 여성 아이콘 ‘핀·업·걸’

● ‘섹시’와 ‘복고’의 이종교배, 핀업걸 스타일

“모든 남자들이 스파이라고 말하는 여인 그대는 베티 데이비스의 눈동자를 가진 여인….”

1981년 빌보드 싱글차트 1위에 오르며 인기를 얻었던 팝 가수 킴 칸스의 노래 ‘베티 데이비스 아이즈’는 영화 ‘제인의 말로’로 유명한 여배우 베티 데이비스를 찬양하는 노래다. 1930년대 미국 파라마운트에서 만든 글래머 캐릭터 ‘베티 붑’의 실제 모델이기도 한 베티 데이비스는 메릴린 먼로와 함께 대표적인 핀업걸 스타 중 한 명.

핀업걸은 제2차 세계대전에 동원된 미군 병사들이 여성의 화보를 핀으로 벽에 고정(Pin-Up)시켜놓고 수시로 봤다는 이유로 이러한 모델들을 일컫는 말이 됐다. 눈부신 금발, 터질 듯 풍만한 가슴, 도발적인 면모 뒤에 감춰진 백치미와 보호본능을 유발하는 연약함…. 이런 핀업걸이 21세기에 ‘복고’의 이름으로 다시 각광을 받고 있는 셈이다.

핀업걸이 하나의 콘셉트로 대중문화에 자리잡은 것은 2년 전 아길레라의 3집 ‘백 투 베이직스’ 앨범부터였다. 음악, 패션 모두 1930, 40년대 복고풍을 주제로 한 앨범에서 아길레라는 ‘에인트 노 아더 맨’ ‘캔디 맨’ 등의 뮤직비디오에서 금발의 핀업걸로 등장했다.

이효리와 함께 ‘신상녀’ 신드롬을 만든 가수 서인영도 솔로 음반 ‘신데렐라’를 발표하며 핀업걸로 변신했다. 이효리가 형형색색의 의상으로 발랄함을 강조했다면 서인영은 ‘하이웨스트 팬츠(일명 배바지)’나 레이스 양말 등을 통해 귀여움을 부각시키려 했다.

스타일리스트 홍혜원 씨는 “값싼 이미지를 없애고 한국적 정서에 맞추기 위해 노출을 최대한 줄였다”고 말했다.

● 백치미에서 S라인 알파걸로…21세기 핀업걸

올해 초 루이비통의 2008 봄 여름 패션쇼에서는 ‘간호사 핀업걸’이 등장했다. 루이비통의 디자이너 마크 제이콥스는 여성 모델들에게 빨강 주황 초록 등 원색 계통의 란제리를 입히고 그 위에 속이 다 비치는 가운을 입혀 도발적인 면모를 강조했다. ‘진 핀업걸’을 선보인 샤넬은 팬티에 가까운 진 핫팬츠에 진 재킷을 입은 모델을 선보이기도 했다.

패션컨설팅 업체 인터패션 플래닝의 김도연 수석연구원은 “핀업걸 스타일의 부활은 예견된 일이었다”며 “지난 시즌부터 배바지나 숏팬츠, 체크무늬 셔츠 같은 핀업걸 패션 아이템이 복고풍의 영향으로 패션쇼 무대에 다시 등장하고 있다”고 말했다.

21세기 핀업걸은 저돌적이고 당당하다. 핀업걸을 대표하는 패션 아이템으로는 흰 드레스에 빨간 립스틱, 끝단을 묶어 올린 체크무늬 셔츠에 하이웨스트 팬츠를 들 수 있다. 전과 다른 것이 있다면 과거의 핀업걸이 흰 드레스에 동글동글한 몸매를 드러내며 백치미를 강조했다면 지금은 잘록한 허리, 쇄골 등 잘 다져진 몸의 라인을 과감히 드러내려 한다.

또 올 초부터 유행한 원색 패션의 영향으로 과도한 노출보다는 발랄한 이미지를 부각시키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브랜드 ‘블루걸’의 빨간색 물방울 무늬 원피스나 핑크색 멜빵바지, 에나멜 벨트, 심지어 형광색 란제리까지 경쾌하다. 이런 영향으로 인터넷 쇼핑몰 옥션에서는 핀업걸 관련 상품 중 원색의 에나멜 힐과 벨트만 2400여 종류가 넘는다.

● 이미지만 남은 껍데기 vs 퓨전 핀업걸 시대

보호본능을 유발하는 백인 여성, 그리고 이들을 보며 힘을 얻은 미군…. 전형적인 미국문화로 꼽히는 핀업걸 문화 속에는 전쟁 사회의 모습과 함께 강한 남성이 미인을 얻는다는 가부장적 남성 우월주의가 담겨 있다.

국내에선 1970, 80년대 맥줏집 벽에 걸린 달력 모델인 이른바 ‘캘린더 걸’이나 3류 주간잡지 속 화보 모델이 핀업걸의 시초다.

‘싸구려’ 소리를 들었던 이 핀업걸 패션이 각광받는 것은 왜일까. 패션 홍보대행사 ‘오피스 에이치’의 황의건 이사는 “내포된 문화와는 별도로 스타들에 의해 이미지만 콘셉트로 차용하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그러나 홍익대 간호섭(패션디자인학) 교수는 “‘알파걸’들이 사회에 대거 진출하고 패션 역시 ‘여전사’ 이미지가 대세이다 보니 연약한 핀업걸 이미지에 대한 향수가 나타난 것”이라고 말했다. 과거 젖살이 붙은 여성들이 핀업걸 모델로 활동한 것과 달리 현재는 180cm에 육박하는 늘씬한 여성들이 핀업걸로 활동하고 있는 것도 특징.

인터패션 플래닝 마케팅팀의 한선희 부장은 “‘셀프 홀릭(자신에게 빠져 스스로 마니아가 되는 것) 시대에 핀업걸을 하나의 도전 목표로 삼고 거침없이 드러내길 바라는 여성들의 심리가 반영된 결과”라고 분석했다.

김범석 기자 bsis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