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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갈피 속의 오늘]1941년 수풍댐 첫 송전

입력 | 2008-08-05 02:59:00


중국을 통해 압록강 변을 다녀온 사람들이 종종 내놓는 기념사진이 있다. 압록강에서 거대한 댐을 배경으로 찍은 낭만적인 분위기의 사진이다.

사진 속의 그 댐은 수풍댐. 평북 삭주군 압록강 하구 신의주 북동쪽 80km 지점에 위치한 수풍 수력발전소다. 이 수풍댐은 한반도에서 가장 규모가 큰 댐이다.

압록강에 수풍댐 건설이 시작된 것은 1937년 10월. 중일전쟁이 발발한 지 3개월 지났을 때로, 일본의 대륙 침략 야욕이 본격화되던 시기였다.

일제는 댐 공사를 위해 조선압록강수력발전주식회사를 설립했다. 또한 압록강 건너 일본의 괴뢰국인 만주국에도 만주압록강수력발전주식회사를 만들었다. 일제는 이 두 회사로 하여금 공동 출자 형식으로 댐 공사를 시작하도록 했다. 물과 바람을 이용한다는 의미를 담아 수풍댐으로 이름 지었다.

4년 가까운 공사 끝에 1941년 8월 5일 수풍댐 1호기의 첫 송전이 이뤄졌다. 당시 하루 발전 용량은 10만 kW. 단일기로는 세계 최대의 발전량이었다. 첫 전기는 만주국으로 보내졌고 조선에 대한 송전은 9월부터 이뤄졌다. 이어 2∼6호기가 추가로 건설됐고 1943년 11월부터는 모두 60만 kW를 발전하기 시작했다.

수풍댐은 높이가 106.4m, 길이 900m로 당시로선 동양 최대 규모였다. 지금도 한반도에서 가장 큰 댐이 수풍댐이다. 댐 건설과 함께 생긴 인공호수 수풍호의 규모도 대단하다. 저수량 116억 t에 수면 면적 3458km², 호수 둘레 1074.4km에 달한다.

이 수풍댐 덕분에 1940년대엔 북한 지역이 남한 지역보다 전력 사정이 훨씬 좋았다. 하지만 일본의 댐 건설의 속셈은 대륙 침략을 가속화하기 위해서였다. 만주국에 대한 원활한 전력 공급을 통해 대륙을 지배하겠다는 의도였다.

수풍댐은 6·25전쟁 때 유엔군의 폭격으로 발전소 설비의 70%가 파괴됐다. 이후 북한이 옛 소련의 지원을 받아 복구했고 1958년부터는 원래 수준인 70만 kW를 발전했다.

하지만 북한의 경제난 등으로 인해 수풍댐은 많이 낙후했고 지금은 원래의 30∼40% 정도만 발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과 함께 관리하고 있지만 발전량을 절반씩 나누지 못하고 90%를 중국이 가져간다.

한국 최대의 댐이라는 당당한 기록을 갖고 있지만 수풍댐의 68년 역사는 수난의 연속이 아닐 수 없다.

이광표 기자 kple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