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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재기자의 무비홀릭]영화평 뒤집어 읽기

입력 | 2008-07-22 03:01:00


“슬픈 만큼 아름다운 영상”

→ 때깔 좋은데 스토리 엉망

“뻔한 스토리에 뻔한 감동”

→ 재밌는 영화… 권해 볼 만

《“앗, 속았다!”

수많은 매체에서 쏟아져 나오는 영화 리뷰들을 읽은 당신.

리뷰를 곧이곧대로 믿고 극장에서 영화를 선택했다가 낭패를 본 경험이 있을 것이다.

그건 리뷰가 거짓말을 해서가 아니다.

영화기자나 평론가 집단이 내리는 영화평과 대중의 평균적 취향 사이에는 일정한 간극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아예 언론에서 악평을 한 영화만 골라서 보는 사람도 있다.

영화 리뷰를 비난하지 말자.

그 대신 영화평 속에서 행간을 읽는 능력을 키우자.》

△영화 리뷰에 관용적으로 등장하는 문구 △실로 매혹적이고 근사한 표현이지만 액면 그대로 받아들였다간 뒤통수를 맞을 수 있는 문구들을 콕 집어 보았다. 영화평을 뒤집어 읽는 요령을 소개한다.

①“아쉬우면 아쉬운 대로, 만족스러우면 만족스러운 대로 볼 만한 영화다.”

→ 도대체 보란 말인가 말란 말인가, 이 사람아. 필자 스스로는 낄낄거리며 재밌게 봤지만 다른 영화전문가들은 “유치한 영화”라고 비판할 것 같을 때 흔히 사용하는 문구.

②“군더더기 없는 깔끔한 영상과 절제된 감정.” “과도한 욕심을 부리지 않고 스토리와 화면에선 오히려 절제의 미학이 읽힌다.”

→거장 감독이 연출한, 무지하게 졸린 영화에 자주 사용되는 표현. 여친(여자 친구)과 함께 봤다간 싸우고 헤어지기 십상인 영화. “거장의 숨결이 느껴진다”도 비슷한 표현이다.

③“비록 불편하지만 우리가 보아야만 하는 진실.”

→환경 문제, 탈북자 문제, 사회적 소수에 대한 차별 문제 등 주제가 지닌 의미는 훌륭하지만 사정없이 졸린 영화들에 간혹 사용되는 문구. 학교 단체관람용으론 ‘딱’인 영화다.

④“다소 억지스러운 설정도 눈에 띄지만 스토리의 개연성까지 침해하지는 않는다.”

→설정이 무척 억지스러운 영화에 사용되는 표현.

⑤“감독은 명확하게 결론을 내려 이야기를 마무리짓기보다는 열린 결말을 남겨 놓는다.”

→끝이 상당히 찜찜하고 허무한 영화란 얘기. 이런 영화는 보고 나면 하루 종일 찜찜하다.

⑥“탐미주의의 극치.” “슬픈만큼 아름다운 영상.”

→때깔은 좋은데 스토리가 전혀 이어지지 않아 ‘대략 난감’한 영화들에 사용하는 표현. 이런 ‘아름답고 난감한’ 영화만 만들어내는 감독들에 대한 관용적 표현으론 ‘영상미학의 대가’가 있다.

⑦“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뒤섞고, 현실과 환상의 경계를 무너뜨린다.” “몽환적인 영화.”

→일단 보지 마시길. 머리 터질 만큼 지적이고 어렵고 실험적인 영화들에 사용되는 문구. 이와 더불어 “의식의 저편, 깨어 있는 정신의 실체를 파악하게 된다”고 평가된 영화도 피할 것. 보자마자 5분 안에 잠이 쏟아지는 ‘불면증 치료용’ 영화란 뜻.

⑧“단순한 이야기이지만 팝콘을 먹으면서 연인과 함께 즐기기엔 손색이 없다.” “상투성을 벗어나지 못하는 영화지만 가볍게 웃으면서 극장 문을 나설 수 있을 듯.”

→필자 자신은 재미없게 봤지만 왠지 흥행은 잘될 것 같은 느낌이 들 때 사용하는 문장. 일종의 ‘보험’을 들어 놓는 문구로 보면 된다.

⑨“뻔한 스토리에 뻔한 감동.”

→재밌는 영화란 뜻.

⑩“노골적인 사실주의보다는 무한히 파편화된 욕망의 다중노출에 놓여 있다.”

→도대체 뭔 말인가 이 사람아. 네가 나를 모르는데 난들 너를 알겠는가 이 사람아.

⑪“어찌 됐든 주사위는 던져졌다. 이제 모든 판단은 관객의 몫이다.”

→필자 스스로가 판단하기 무척 어려울 때 쓰는 표현. “난 모르겠어요. 결과가 말해주겠죠”라는 무책임한 말을 이렇게 바꿔 쓴다. 비겁한 변명입니다!

⑫“불친절하지만 매력적이고, 건조하지만 뜨거운 열정을 품은 영화다.”

→불친절하고 건조한 영화란 의미.

⑬“윤리적 선택과 실존적 결단 사이에서 방황하면서 구원의 가능성에 대한 물음을 던진다.”

→‘더럽게’ 복잡한 영화란 뜻. 이와 비슷한 표현으론 ‘파편화된 욕망’ 등이 있다. 아는 척하기엔 최적의 영화.

이승재 기자 sjd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