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폭력시위 사태를 보면 강철 같은 한 여인이 떠오른다. 칼리굴라의 눈과 메릴린 먼로의 입술을 가진 마거릿 대처는 과다한 사회복지 지출과 노사분규로 외환위기에 처한 영국 경제를 살려낸 강력한 지도자였다. 또한 ‘대처리즘’이란 단어를 세계 각국 사전에 올린 정치인이기도 하다. 대처리즘이란 무엇인가? 경제적 자유주의와 사회적·도덕적 보수주의의 결합으로 극심한 경기침체와 마이너스 성장 극복을 위해 등장한 이즘이다.
1970년대 영국은 토인비가 크게 탄식한 무기력하고 방임적인 국민성으로 치유 불가능한 중병을 앓고 있었다. 높은 실업률, 인플레이션, 바닥으로 떨어진 경제, 그중에서도 절박한 것은 시도 때도 없는 ‘파업 열풍’이었다. 노조들의 대규모 파업으로 공장 가동이 중단되고 기차와 지하철이 멈추어 시민들은 학교나 직장에 갈 수 없었다.
그 불만의 겨울은 국민이 더는 하나의 국민이 아니라 갈기갈기 찢긴 분파적 이익집단일 뿐, 법도 정의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총체적 절망감만 안겨주고 있었다.
총리에 오른 대처는 반(反)기업적이고 호전적 형태로 국가경제의 발목을 잡는 노동조합에서 해결점을 찾았다. 사용자를 치열한 경쟁에 노출시키는 한편, 분파적 이익만 챙기며 파업을 일삼는 노조의 구태를 혁파했다. 강철 여인은 노동법을 네 차례나 개정해 부당 파업으로 피해가 발생했을 때 노조 측에 배상 책임을 묻는 초강경책을 밀고 나갔다.
극작가 아서 밀러가 대처를 만났을 때 그에게 에이브러햄 링컨의 말을 들려주었다. 대처는 입가에 미소를 띠며 핸드백 속에서 낡은 신문 쪽지를 꺼냈다. 신문에는 바로 조금 전 밀러가 들려주었던 기도문의 구절이 실려 있었다. ‘강자를 약하게 만들어서는 약자를 강하게 만들 수 없습니다. 검약을 강요해 번영을 가져올 순 없습니다. 임금을 지급하는 사람을 끌어내려서는 임금 생활자를 도울 수 없습니다.’
2006년도 영국은 국내총생산 규모에서 미국 일본 중국에 이어 세계 5위, 기업자유지수 6위를 기록하고 있다. 이는 아이러니하게도 노동당 토니 블레어 정부가 보수당 대처와 동일한 시장경제정책을 추구한 결과였다.
대처는 1979년 5월 총리에 오르고 3선 재임 기간 내내 하루 19시간씩 주 7일 근무한 완벽주의자였다. 국민과 함께 고통을 나누겠다는 의지로 내내 각료들과 똑같은 봉급만 받았다. 또한 여자라고 자기를 비판하는 적을 오히려 중용했다. 노쇠한 영국과 대처를 얕본 포클랜드 전쟁에서 그는 당당하게 대승을 거둔다. 회복 불능으로만 보였던 영국병, 이를 극복하고 쓰러져 가는 조국을 다시 일으켜 세운 대처리즘, 강인한 리더십의 대처, 그는 마침내 조국의 운명을 바꿔 놓았다. 헨리 키신저는 말한다. “위대한 지도자는 국민에게 영감을 준다. 즉 국민 저마다 자기의 잠재력을 최대한 발휘하도록 돕는다.” 대처가 바로 그런 사람이다.
지도자 지위에 올라 처음엔 호기만만하다 성공하지 못하고 주저앉는 가장 큰 이유는 지도자의 자질과 능력 문제이다. 오늘의 사태는 이명박 정부가 첫 내각 구성 문제, 국회의원 선거 공천 문제, 좀 더 신중했어야 할 미국산 쇠고기 수입 문제에서 국민의 신뢰를 잃으면서 비롯됐다. 국민의 운명을 걸머진 대통령은 자기를 버릴 수 있어야 한다. 대처, 덩샤오핑, 박정희처럼 자신의 목숨을 조국의 제단에 바칠 수 있어야 한다. 위기의 한국, 지금 이것이 문제다.
고정일 소설가 동서문화 발행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