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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속 건축]‘프랭크 게리의 스케치’

입력 | 2008-06-04 03:01:00

생애 마지막 연출작 ‘프랭크 게리의 스케치’에서 시드니 폴락은 건축가 게리의 공간에서 자유로운 상상력을 만끽했다. 게리가 설계한 스페인 빌바오 구겐하임 미술관을 촬영하고 있는 폴락. 사진 제공 소니픽처스클래식


“건축은 또 하나의 드라마” 시드니 폴락 최후 연출작

지난달 26일 암으로 사망한 영화감독 시드니 폴락이 마지막으로 연출한 작품은 2005년 작 ‘프랭크 게리의 스케치’입니다.

게리는 스페인 빌바오의 구겐하임 미술관 설계자로 유명한 캐나다 출신의 건축가입니다. 폴락은 구겐하임 미술관, 미국 로스앤젤레스의 월트 디즈니 콘서트홀 등 세계 곳곳에 산재한 게리의 주요 건축물들을 4년간 찾아다니며 다큐멘터리 영화를 만들었습니다.

이 영화는 게리의 건축 작업 과정과 함께 폴락의 촬영 작업을 보여줍니다. 다섯 살 많은 게리와 앞서거니 뒤서거니 이곳저곳을 오가며 건축과 공간을 기록하는 노장 폴락은 어린아이처럼 흥분한 얼굴입니다.

“난 저 커브를 카메라에 담아야겠어!”

구겐하임 미술관의 출렁거리는 곡면 외벽에 흥분해 카메라를 들이대는 폴락. 왜 그는 고희(古稀)를 앞둔 나이에 새로운 탐구 대상으로 게리의 건축을 선택했을까요.

폴락은 영화에서 게리를 “정의(定義)를 정의한 건축가”라 불렀습니다.

아무렇게나 찍찍 그어댄 듯하지만 절묘하게 정돈된 느낌을 주는 스케치가 거대한 건축물로 실현되는 과정. 그 작업 과정을 필름에 옮겨 담으며 폴락은 웬만한 영화를 뛰어넘는 드라마틱한 감흥을 느꼈을 것입니다.

게리의 작업 과정은 우리가 보통 ‘상식’이라고 생각하는 것 가운데 창의성을 무의식적으로 억압하는 요소가 얼마나 많은지 보여줍니다. 그는 “왜 꼭 건물의 벽이 수직으로 세워져 있어야 하느냐”고 묻습니다. 건물이 들어서야 할 장소를 보고 느낀 그대로 표현한 프리핸드 스케치. 구불구불 얽힌 곡선들이 입체로 실현되면서 상상하지 못했던 공간을 이뤄냅니다. 구겐하임 미술관 등 게리의 건축물이 도시 전체에 문화적 경제적 르네상스를 가져온 것도 그의 창의적 상상력 덕분이겠죠.

1985년 ‘아웃 오브 아프리카’로 아프리카 공간의 아름다움을 스크린에 담아냈던 폴락. 그가 조금 더 일찍 게리의 공간을 경험했다면 어떤 영화가 나왔을까요.

손택균 기자 soh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