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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횡설수설/허문명]‘웰빙 過勞’

입력 | 2008-06-02 03:01:00


쇠고기 고시 이후 촛불시위가 확산되고 있다. 촛불시위가 시작된 지 일주일 만인 지난달 31일에는 서울 4만 명을 포함해 전국에서 6만여 명이 모였다. ‘정권 물러가라’는 말이 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학생 예비군 주부 넥타이부대 등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하고 있다는 데 사태의 심각함이 있다. 청와대 일부 수석과 비서관들은 직접 집회를 찾아 민심을 살폈다고 한다. 얼굴이 많이 알려진 곽승준 국정기획수석은 모자를 눌러쓰고 안경까지 쓰는 ‘변장’을 했다.

▷치안업무를 총괄하는 이종찬 민정수석은 경찰에 알리지 않고 오전 2∼3시경까지 거리에 남아 시민들과 대화를 나눈 것으로 알려졌다. 박재완 정무수석도 현장에서 암행(暗行)을 했다. 정무수석실 직원들은 매일 교대로 청계광장에서 야근을 하다시피 하며 참가자들과 ‘시위를 함께하는’ 현장 체험을 하고 있다. 이들이 내린 결론은 한결같다. “생각보다 민심의 분노가 거세다”는 것이다. 한 수석비서관은 “정부가 많이 반성해야겠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고 말했다.

▷정부는 ‘얼리 버드(early bird)’ 또는 ‘월화수목금금금’을 외치며 과거 어느 정부보다 일찍 출근하고 늦게 퇴근하는 부지런함을 과시했다. 바쁘게만 설친다고 국정이 원활하게 돌아가는 것은 아니다. 이명박 대통령이 부지런하니 대통령의 타임 스케줄에 맞추느라 바쁜 척했던 것은 아닌가. 청와대 수석들의 과로는 민심과는 거리가 먼 자기들끼리의 ‘웰빙 과로’였다는 생각마저 든다. 보여주기 위한 부지런, 눈도장 찍기 위한 과로로는 민심을 얻기 어려울 것이다. 진작 새벽잠을 줄이고 현장을 뛰어다녔더라면 이처럼 민심이 이반되지 않았을 것이다.

▷공무원들은 새벽 별 보기 운동을 할 정도로 바쁘게 일한다고 하는데 정작 보고를 듣는 대통령은 “신문에 나온 것을 왜 보고하느냐”고 호통을 친다는 소식이다. 청와대 안에 평생 ‘듣기’보다는 ‘말하기’에 익숙하고, 어려움 모르고 세상을 산 책상물림들이 많아 민심과 소통이 잘 안된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민초의 목소리를 듣는 노력이 부족했던 것이 민심을 악화시킨 원인이다. ‘소통 소통’ 했지만 1차적 소통 실패의 현장은 바로 정부 내부인 것 같다.

허문명 논설위원 angelhuh@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