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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광장/이두원]경제정책, 시장의 힘 믿고 멀리 보라

입력 | 2008-04-30 03:00:00


이명박 정부는 분배보다는 성장을 택했으며, 이러한 선택으로 절대다수 국민의 지지를 얻어 지난 대선에서 승리했다. 그러나 최근 정부 내에서 성장의 방법론에 대한 다양한 이견(異見)이 나오고 있으며, 이러한 이견의 표출은 중요한 경제정책의 수립에 있어서 위정자들을 크게 양분하고 있다. 활발한 토론과 자유로운 의견 개진은 좋으나 이런 논의과정이 여과 없이 국민에게 공개될 경우 시장에 혼선을 낳는 부작용이 있다. 자칫 일관성 없는 정책방향이라도 제시된다면 민간기업의 장기적인 투자계획 수립에도 방해가 된다.

그런데 최근 몇 달 사이에 불거진 이러한 불협화음의 과정을 살펴보면 그 중심에 기획재정부가 있음을 알 수 있다. 예를 들어 산업은행 민영화 방안은 기획재정부와 금융위원회가 메가뱅크 방안을 놓고 의견 대립을 보였으며, 환율과 금리 정책은 기획재정부와 한국은행이 날카로운 신경전을 벌였다. 또한 작년에 걷은 세계(歲計)잉여금의 처리에 대해서는 기획재정부의 강만수 장관과 한나라당의 이한구 정책위의장 간에 노골적인 설전이 오가기도 했다.

금융정책과 재정정책, 그리고 환율정책을 놓고 기획재정부가 다른 경제부처들과 맞서게 된 배경에는 크게 다음과 같은 몇 가지 원인이 있을 것이다.

첫째는 경제정책을 책임지고 있는 부처로서 이명박 정부가 약속한 성장률을 시급히 달성해야 한다는 조급증이 있었을 것이다. 이런 성장 조급증 때문에 높은 환율을 유지해서라도 수출을 활성화하고, 법을 개정해서라도 세계잉여금을 추경예산으로 편성해 경기부양을 하고 싶다는 유혹에 빠진 것이다.

단기 성장책 아닌 잠재력 확충을

둘째는 현 경제상황에 대한 인식의 차이가 있을 수 있다. 일반적으로 극심한 경기침체 또는 경제위기 상황에서는 정부가 적극 개입해서라도 경기를 살리고 수출을 활성화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그렇지 않을 경우에는 대개 정부의 개입은 단기간의 반짝효과만 있을 뿐, 장기적으로는 오히려 각종 부작용만 낳게 된다. 아마도 기획재정부는 지금 우리 경제상황이 정부의 적극적인 개입이 필요한 어려운 상황이라고 판단했을 수도 있다.

가장 중요한 세 번째 원인은 기획재정부가 가지고 있는 시장경제에 대한 가치관이 다른 경제부처와 차이가 나기 때문일 것이다. 즉, 민영화 환율 금리 수출 경기부양 등에서 기획재정부가 주도권을 쥐고 문제를 풀어야 한다는 옛날식 사고방식에 사로잡힌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낳고 있는 것이다. 바로 이런 생각 때문에 시장과 민간의 힘을 믿지 못하고, 정부 주도의 단기적인 성장책을 추구하게 됐을 것이다.

그러나 현재 한국경제에 필요한 것은 정부 주도의 단기적인 성장책이 아니라 민간이 주도하는 장기적인 성장잠재력 확충이다. 바로 그런 점이 이명박 대통령의 경제철학과 일맥상통하며, 동시에 세계경제의 흐름과도 어긋나지 않는다.

다행히 최근 청와대를 중심으로 정책혼선이 어느 정도 정리돼 가고 있고, 그 과정에서 공교롭게도 대부분의 주요 현안에서 기획재정부의 주장이 보류되거나 또는 기각된 것을 알 수 있다.

산업은행의 민영화는 금융위원회가 주장했던 신속한 처리 쪽에 무게가 실리고 있으며, 환율과 금리정책도 일단은 한국은행의 독립성을 존중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는 듯하다. 첨예하게 대립했던 추경예산의 편성도 당분간은 그 논의가 보류될 것으로 보인다.

결국은 정부 주도의 단기적인 성장을 추구하기보다는 다소 시간이 걸리더라도 민간의 투자를 통한 성장잠재력의 확충에 더 무게를 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28일 이 대통령과 재계 대표들의 회합에서 발표된 100조 원 규모의 투자계획은 매우 고무적이다.

조급증 털고 내부개혁 지속해야

애초에 7% 성장을 호언한 정부로서는 올해의 성장률이 5% 정도밖에 안 될 것이라는 예상에 매우 답답한 심정일 것이다. 그러나 이제는 한국경제의 잠재력을 믿고 차분히 기다릴 줄 아는 인내심이 필요하다.

정부가 성장 조급증을 버리고 차분하고 지속적인 내부개혁을 통해 민간기업의 투자를 활성화해 나간다면 세계적으로 퍼지고 있는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 부실 사태가 진정됐을 때 한국경제는 다시 한 번 도약할 기회를 누릴 수 있을 것이다.

이두원 객원논설위원·연세대 교수·경제학 leedw104@yonsei.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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