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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피아니스트 임동혁, 골드베르크 변주곡 들고 순회연주

입력 | 2008-02-14 02:58:00

11일 오전 서울 밀레니엄힐튼호텔 로비 커피숍에서 만난 피아니스트 임동혁. 그는 “전국 순회 공연을 하면서 나만의 바흐 연주의 길을 찾아나갈 것”이라며 “무대마다 어떻게 색깔이 변할지 나도 모르겠다”고 말했다. 김재명 기자


독일의 속도 무제한 고속도로 ‘아우토반’. 피아니스트 임동혁(24)이 탄 2인승 스포츠카 BMW Z4의 속도계는 시속 250km를 넘나들었다. 하노버에서 출발한 그의 차는 불과 반나절 만에 980km 떨어진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까지 달리곤 했다.

“누구나 달리고 싶은 갈망이 있지 않나요? 시속 180km로 달리는 차들이 휙휙 뒤로 지나갔지요. 시속 250km로 달리는데 뒤에서 상향등을 켜면서 비켜 달라는 차도 있었고요.”

2005년 제15회 국제쇼팽콩쿠르에서 형인 피아니스트 임동민(28)과 함께 공동 3위를 수상했던 피아니스트 임동혁. 쇼팽콩쿠르 이후 갑자기 슬럼프에 빠진 그는 지난 2년을 그렇게 스피드에 매달려 보냈다. 머리도 샛노랗게 또는 연푸른색으로 물들였다.

그러던 그가 2년간의 방황을 접고 14일부터 다음 달 7일까지 전국 12개 도시 순회 연주회를 연다. ‘쇼팽 스페셜리스트’로 소녀 팬들을 몰고 다녔던 그는 이번에는 뜻밖에도 종교적, 명상적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바흐의 곡을 들고 나왔다.

○ 바흐는 내 인생의 탈출구

임동혁은 7세에 피아노를 시작해 이탈리아 부조니콩쿠르, 일본 하마마쓰콩쿠르 입상, 프랑스 롱티보콩쿠르 1위 등 어릴 적부터 ‘신동 피아니스트’로 커왔다. 그러던 그에게 슬럼프가 닥쳤다.

“어릴 적부터 하루 8시간 이상씩 피아노만 쳤어요. 남들처럼 하고 싶은 것을 해본 적이 한 번도 없었지요. 만일 그때 안 터졌더라도 언젠가는 터지고 말았을 거예요.”

그는 수많은 연주 일정을 취소하고 하노버에서 혼자 요리하고, 빨래하며 사는 고독한 생활을 즐겼다. 그리고 스피드에 매달렸다. 그러나 짜릿한 쾌감도 잠시. 속도도 익숙해지니 더는 빠르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피아노를 다시 하기 위해 2007년 차이콥스키 국제콩쿠르에 도전했다. 결과는 공동 4위 입상. 퀸엘리자베스(2003), 쇼팽(2005)에 이어 세계 3대 콩쿠르에 입상하는 쾌거를 이뤘지만 허전함은 달래지지 않았다.

“지난해 8월 차이콥스키콩쿠르를 마치고 한국에 들어와 쉴 때였어요. 친구 집에서 놀다가 글렌 굴드가 연주하는 바흐 ‘골드베르크 변주곡’을 듣고 멍해졌어요. 굴드의 군더더기 하나 없는 완벽한 연주에 반해 버렸어요. 저렇게 쳐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죠.”

지쳐 있던 그에게 바흐의 정제된 순수는 위로와 안식으로 다가왔다. 그리고 바흐의 기본으로 돌아가면서 피아니스트로서의 새로운 탈출구를 얻었다. 그는 “내 성격에 하나에 빠지면 스며들 듯이 차근차근 하지 못한다. 이왕 할 바에야 ‘찬물에 손을 확 담그자’는 식으로 바흐의 최대 명곡인 ‘골드베르크 변주곡’에 도전했다”고 말했다.

○ “바흐 곡 고도의 테크닉 요구”

바흐가 2단 건반을 사용해 작곡한 골드베르크 변주곡은 수학적으로 계산된 정교한 음표 속에 천변만화하는 변주가 펼쳐지는 명곡. 임동혁은 “낭만주의 곡들은 음표 몇 개 빼먹어도 분위기로 몰고 나가면 되는데, 바흐는 꾸밈음 하나하나까지도 정확하게 짚어내는 고도의 테크닉을 요구한다”고 설명했다.

“모두 바흐 프로그램이지만 제 색깔이 없지는 않아요. 1부에 연주하는 ‘시칠리아니’나 부조니가 편곡한 ‘샤콘’은 바흐 곡 중 가장 낭만주의적인 분위기의 곡입니다. 전국 순회 연주를 통해 바흐 골드베르크 변주곡을 해석하는 나만의 길을 찾을 겁니다.”

임동혁은 4월에는 영국 EMI 본사에서 ‘골드베르크 변주곡’ 음반을 녹음할 예정이다. 그는 “바흐에서 힘을 얻어 내 고향인 쇼팽으로 돌아갈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현재 뉴욕 줄리아드음악원 전문연주자 과정에서 피아니스트 에마누엘 액스를 사사하고 있다. 1984년 쥐띠인 그는 “올해는 체력도 기르고 건전한 생활 속에서 피아노에만 푹 빠져 연습하고 싶다”며 “이를 위해 결혼도 빨리 하고 싶다”고 밝혔다. 3만∼8만 원. 02-318-4304

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 영상취재: 동아일보 사진부 김재명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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