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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정호 칼럼]정치와 경제로 문화의 꽃을 피우자

입력 | 2008-01-10 02:59:00


되돌아보니 지난 연대 동안 칼럼을 쓸 때엔 직간접으로 무엇을 하지 말라는 얘기를 주로 했던 것으로 생각된다. 해도 바뀌고 세상도 바뀔 모양이니 앞으론 무엇을 좀 해 보자는 얘기를 해 볼까 싶다.

대다수 국민의 지지와 기대 속에 새달이면 새 정권이 들어선다. 당선자의 이름을 얹어 이명박(MB) 정부라 자칭하고 나선 새 정권은 한국 현대사에 어떤 시대를 열어 가려는 것일까.

물론 경제도 시급하다. 투자를 늘려 많은 일자리를 창출해 실업문제에 숨통을 터 주고 한국의 잠재 성장력을 활성화해 국제 경쟁력을 높이는 것 등 모두 MB 정권에 해결을 기대하는 과제다. 그렇대서 MB의 시대가 ‘경제의 시대’가 되는 것인가.

그건 아니다. 우리는 이미 1960년대에서 70년대의 두 연대 동안 전통적인 농업국가를 현대적인 중화학 산업국가로 탈바꿈시킨 성공적인 ‘경제의 연대’ ‘산업화의 연대’를 경험했다. MB는 바로 그런 연대에 성공 신화의 주인공으로 세상의 각광을 받았다.

소모적 이념논쟁으로 국론이 양분되고 시대착오적인 좌파의 대내외정책 및 대북정책으로 일그러진 정치의 여러 구석을 바로잡아 다시 화해와 협력의 광장을 마련하는 것도 미룰 수 없는 중요 과제다. 그렇대서 MB의 시대가 ‘정치의 시대’가 되는 것인가.

산업화-민주화 이은 새 연대를

그건 아니다. 우리는 이미 1980년대에서 90년대의 두 연대 동안 점령군의 명령이나 혁명군의 무력이 아니라 맨 주먹의 시민파워로 군부정권을 퇴출시키고 문민정부를 탄생시킨 만방에 자랑할 ‘정치의 연대’ ‘민주화의 연대’를 경험했고, 1960년대에 반(反)군부 저항운동의 대열에는 젊은 대학생 MB가 참가했다는 것도 세상은 알고 있다.

물론 지난 ‘경제의 연대’에 산업화가 완성된 것도 아니요, ‘정치의 연대’에 민주화가 완성되었다는 것은 아니다. 지속 가능한 경제 성장을 추구하고 ‘보다 많은 민주주의를’ 끊임없이 시도한다는 것은 국정을 책임진 지도자에게 주어진 항시적인 과제다.

경제의 연대, 정치의 연대에 뒤이어 등장한 MB 정권은 과거의 부정 위에서가 아니라 과거의 긍정 위에서, 과거의 토대 위에서, 과거를 밑거름 삼아 새로운 연대를 열어 가야 한다. 그 새로운 연대를 시쳇말로 ‘선진화’의 연대라 일컫는 것은 혀가 짧은 표현이다. ‘후진화’를 내세우는 정권이 없는데 ‘선진화’를 내건다는 것도 우습지만 선진화란 구호는 일반적이요, 추상적이라 아무 방향도, 내용도 없다. 그래서 나는 MB 정권이 21세기의 문지방을 넘은 한국에 ‘문화의 연대’를 열어 가라고 제언하고 싶다.

왜 문화인가. 경제와 정치면 됐지 문화라는 배부른 소리를 왜 한다는 말인가. 탁상공론이 싫으니 구체적 체험 사례를 들겠다. 1000만 도시 서울의 서쪽에 수십 년 동안 수도의 쓰레기를 쌓아 만든 난지도-거기에 1999년 겨우 수삼십 명이 그 드넓은 공간을 이용하는 골프장을 만든다기에 그보단 모든 시민이 이용할 수 있는 녹지 공원을 만드는 게 좋지 않겠느냐고 제안해 봤다. 그러자 시정 책임자는 다리가 불편한 콤플렉스를 지닌 대통령께 하소연한 모양이다. 며칠 후 노동자도 필드에 나가는 ‘대중 골프’의 시대를 열려면 난지도 골프장은 필요하다는 DJ 대통령 담화가 나왔다. 민주화 투사가 연 그것이 ‘정치의 연대’였다.

문화의 힘 펼쳐 보일 좋은 기회

난지도 골프장 앞에 국제축구연맹(FIFA) 주최 2002 한일 월드컵대회를 앞두고 세계에서 제일 높이 치솟아 오르는 분수를 설치한다고 또 법석을 피웠다. 분수대나 주변 경관의 심미적 고려 없이 그저 물높이로 세계 제일을 자랑하겠다는 발상에 대해 나는 골프장의 선례가 있어 입을 다물어 버렸다. 전력, 곧 석유만 있으면 아프리카의 바나나 공화국도 할 수 있는 ‘세계 제1’의 분수대를 만들고 우쭐대는 그것이 지난날의 ‘경제의 연대’였다.

문화가 없는 정치의 꼴, 경제의 꼴을 교과서처럼 잘 보여 준 예라 싶어 이 보기를 들었다. 문화는 정치나 경제에 기생하는 사치품이 아니다. 문화는 정치와 경제를 살리는 힘이다. 모든 훌륭한 경제, 훌륭한 정치는 반드시 아름다운 문화의 꽃을 피운다. 문화가 시든 곳에서는 경제와 정치도 시든다.

최정호 울산대 석좌교수·본보 객원大記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