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6자회담에서 약속한 ‘연내 핵 프로그램 신고’를 하지 않은 채 해를 넘겼다. “우라늄농축프로그램(UEP) 자체가 없어서 신고에 포함시킬 수 없다”는 것이 표면적인 이유다. 이로써 비핵화 2단계 로드맵의 이행은 물론이고 3단계인 북의 핵 폐기는 더 불투명해졌다.
관계국 일각에선 “어차피 북이 한 번의 신고로 끝낼 나라는 아니지 않으냐”면서 좀 더 시간을 주자는 얘기가 나온다지만 언제까지 북의 약속 위반을 눈감아줘야 하는지 의문이다. 북은 내심 ‘대충 신고하고 버티면 미국도 묵인할 것’이라고 생각할지 모르나 착각이다. 오히려 콘돌리자 라이스 미국 국무장관의 경고대로 ‘중대 국면’이 올 수도 있음을 알아야 한다.
그런 북한이 어제 발표한 신년 공동사설에선 10·4 남북 정상선언의 철저한 이행을 우리 측에 촉구했다. 한마디로 노무현 대통령이 평양에서 김정일 국방위원장에게 약속한 대북(對北) 경협사업을 지키라는 것이다. 북의 표현대로 옮기면 “북남 경제협력을 공리공영, 유무상통의 원칙에서 다방면적으로 추진해 나가는 것을 장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율배반의 극치다. 자신들이 한 약속은 안 지키면서 우리에겐 약속 이행을 강요하고 있다.
북은 세상이 바뀌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 이명박 정부가 출범하게 되면 더 긴밀해진 한미공조를 통해 대북 압박의 수위가 높아질 것은 자명하다. 그동안 김대중 노무현 정부는 미국에 대해 “북을 너무 강하게 압박하지 말라”고 주문했고, 핵 실험 후 국제 제재 속에서도 경협을 중단하지 않아 북의 숨통을 틔워 줬지만 이젠 다르다. 이명박 당선인은 이미 북핵 폐기 없이 본격적인 대북 경협은 어려울 것임을 분명히 했다.
다행히 북은 공동사설에서 전과는 달리 이명박 당선인과 한나라당을 비난하지는 않았다. 공연히 자극할 필요가 없다고 봤겠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북은 이제라도 핵 폐기 과정에 성실하게 복귀해 미국은 물론 이명박 당선인의 짐을 덜어 줘야 한다. 살길이 따로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