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6세에 명예퇴직 신청을 했다가 오히려 호남지역본부장에서 두 단계 승진한 김성우 신한은행 부행장. 사진 제공 신한은행
신한銀 김성우 부행장 “나이보다 실력… 열정가지면 기회옵니다”
56세라면 은퇴를 고민해야 하는 시기다. 김성우(56) 신한은행 부행장은 실제로 지난해 말 명예퇴직 신청서를 회사에 냈다. 28년 동안 몸담은 회사를 떠나기로 한 것은 쉽지 않은 결정이었다. 그는 아내(이승희 씨·51)에게 “조그만 밭을 하나 사 농사를 짓자”고 했다. 하지만 김 부행장에게 되돌아온 건 명예퇴직 결정이 아니라 승진 통보였다. 그것도 호남지역본부장에서 부행장보를 건너뛰고 부행장으로 두 단계나 승진한 것이다.
인사 통보를 받은 지난해 12월 21일. 광주에서 밤 열차를 타고 서울로 왔다. 다음 날 신상훈 신한은행장은 악수를 청하며 “일 잘해라”라는 한마디만 했다. 신 행장은 일을 ‘열심히’ 하는 것보다 ‘잘’하는 걸 좋아하는 스타일이다.
○ 연말 금융권 인사중 가장 파격
한 임원은 “신 행장께서 ‘나이보다 실력’을 중시해 발탁한 것으로 알고 있다”며 “호남지역이 원래 성과가 잘 안 나는 곳인데 2년 연속 전국 지역본부 가운데 평가 1위를 한 점이 높이 평가됐다”고 설명했다.
신한은행 13명의 부행장 가운데 가장 나이가 많은 김 부행장의 승진은 지난해 말 금융권 인사에서 가장 파격적이고 특이하다. 명예퇴직을 신청했는데 두 단계 승진 발탁이라니….
지난해 12월 28일 서울 중구 태평로에 있는 신한은행 본점에서 김 부행장을 만났다. 그는 만나자마자 기자에게 90도로 인사를 했다. 오랫동안 영업맨으로 잔뼈가 굵어진 데서 나오는 무의식적인 습관인 듯했다.
명퇴를 결정한 이유가 궁금했다.
“후배들을 위해 물러나는 게 도리라고 생각했어요. 기자 분도 나이 들면 다 알 거요. 특히 금융권에서는 외환위기 때 많은 사람이 옷을 벗고 나갔어요. 이쪽이 은퇴가 빠르지요.”
그는 시골에서 농사를 지으려고 했단다.
“회사 관두고 노상 등산만 다닐 거요? 소일거리가 필요하죠. ‘어떻게 하면 비용을 덜 들이고 살 건가’ 고민해 보니 농사밖에 없습디다. 부행장 통보받고 아내에게 얘기하니 감격해서 울기만 하더군요. 가문의 영광 아닌가요.”
○ “부하 직원들 ‘잘한다’ 칭찬을”
전남 해남 출신인 김 부행장은 광주일고와 전남대(화학과)를 거쳐 과학기술처(현 과학기술부) 공무원으로 일하다 1979년 옛 조흥은행에 입사했다. 28년간 주로 영업을 담당해 왔다.
그가 일하던 호남지역본부(26개 지점)는 2006년과 2007년 연속으로 신한은행의 21개 지역본부 가운데 평가 1위에 올랐다.
비결을 묻자 그는 “지점장들하고 호흡을 잘 맞추는 것하고 직원들 사기를 올려 주는 게 중요한 것 같다”며 “아무리 일을 못하는 직원이라도 ‘잘한다, 잘한다’ 하면 정말 일을 잘하게 된다”고 했다.
영업을 하며 그는 책상에 항상 ‘불감위선(不敢爲先)’이란 글귀를 써놓고 마음을 다스렸다고 했다. 감히 나를 먼저 앞세우지 않는다는 뜻이다.
김 부행장은 그동안 주로 개인고객 영업을 해 왔으나 법원, 병원, 학교 등을 상대하는 기관고객그룹장을 맡게 됐다. 2008년 새해에 새 업무를 맡아 또 다른 인생을 살게 된 셈이다.
“나이든 직원들이 나를 보고 희망을 갖게 됐어요. 늙어도 열정을 가지니까 길이 보이더라고요. 새해에는 나이 든 분들도 힘내시기 바랍니다.”
김상수 기자 sso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