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트렌드 생활정보 International edition 매체

[경제경영]“서구 브랜드 수작에 아시아는 속고 있다”

입력 | 2007-11-24 03:03:00

지은이 닐 부어맨. 사진 제공 미래의 창


◇나는 왜 루이비통을 불태웠는가?/닐 부어맨 지음·최기철, 윤성호 옮김/352쪽·1만2000원·미래의창

■ 저자 닐 부어맨 e메일 인터뷰

지난해 9월 17일 영국 런던 핀스베리 광장.

수많은 사람들. 드디어 심지는 댕겨졌다. 대낮의 화형식. 21세기 현대판 마녀사냥인가. 혹자는 마녀의 죽음보다 더 오열했을지도. 루이비통 지갑, 구찌 셔츠, 랄프로렌 재킷…. 한 영국 작가는 그렇게 럭셔리 브랜드를 불태웠다. “드디어 해방이다”라고 외치며.

작가 닐 부어맨은 독특한 이력을 지녔다. 초등학교 시절부터 브랜드에 빠졌다. 아디다스 운동화가 정체성을 나타낸다고 믿었다.탐닉을 넘은 중독. 패션잡지 편집장까지 됐다. 그 사람이 지닌 브랜드로 인격을 따졌다.

지난해 3월 10일 아침. 좌변기에서 “각성의 순간을 맞이한다”. 동거녀가 놔둔 존 버거의 책 ‘사물을 보는 시각’. “브랜드는 소비자가 그 물건을 갖지 않으면 아무것도 아닌 사람이 된다는 불안감을 조장한다.” 눈앞을 가로막은 허상이 무너져 내렸다.

‘나는 왜 루이비통을 불태웠는가’(미래의 창)는 그 깨달음의 기록이다. 자신이 브랜드 중독자였음을 고백하고 그걸 깨나간다. 화형식은 자신과의 약속이었다.

세상과 브랜드를 향해 저항의 깃발을 내건 그를 e메일로 인터뷰했다.

―당신의 삶은 다소 극단적이다. 과거나 지금의 변화나 일반인에겐 모두 지나친 듯하다. 특히 치약이나 화장수를 만들어 쓰는 건 좀 심하다.

“날 따라하진 마시라. 독자들이 모든 브랜드 제품을 거부할 필요는 없다. 다만 계산대에 섰을 때 한번만 스스로 물어보라. 이것은 ‘필요한 것’인가 ‘원하는 것’인가. 만약 필요한 구입이 아니라면 다시 매장에 돌려놓기를. 그래도 삶은 계속된다.”

―당신은 브랜드 없는 삶을 살려고 재래시장을 뒤지는 등 시간과 노력을 기울인다. 현대인에게 시간은 돈 아닌가. 그런 생활방식은 평범한 사람들로선 꿈도 못 꿀 일이다.

“확실히 나의 새로운 라이프스타일은 품이 많이 든다. 하지만 비밀 하나 알려줄까. 삶은 훨씬 느려졌다! 과거 24시간의 대부분은 일로 채워졌다. 브랜드 제품을 소비하려니 돈이 들었고, 돈을 벌려면 일해야 했다. 현재의 삶은 많은 돈이 들지 않는다. 그러니 일도 적당히 한다. 당신이 왜 그렇게 일에 치이는지, 왜 그리 바쁘게 사는지 아직도 모르겠나.”

―모두가 당신처럼 브랜드를 부정하다간 세계 경제가 파탄날 거다.

“내가 보기엔 기자가 더 극단적인 걸? 다시 말하지만 모든 브랜드를 부정하란 게 아니다. 브랜드가 우리의 삶을 지배하게 내버려 두지 말자는 소리다. 주위를 보라. 루이비통이나 나이키를 신앙처럼 받드는 사람이 점점 늘고 있다. 프라다 핸드백을 가졌다고 당신의 인생이 바뀌진 않는데도 말이다.”

―아시아는 요즘 명품 업계가 가장 주목하는 시장이다. 한국도 명품을 안 가진 사람이 없다. 명품은 거의 당신네 유럽에서 건너온다.

“아시아는 속고 있다. 명품 열풍은 허상이다. 럭셔리 브랜드들은 구두나 핸드백의 99%를 아시아에서 만든다. 그걸 가져와 ‘메이드 인 OOO’라고 말한다. 결국 아시아인들은 자신의 뒷마당에서 값싼 노동력으로 만든 제품을 쓰며 흐뭇해하는 거다. 서구 브랜드의 수작에 놀아나지 말라.”

―올해 한국은 ‘된장녀’ 논란이 있었다. (된장녀를 설명한 뒤) 비판도 거셌지만 다양한 삶의 방식을 일방적 잣대로 판단해선 안 된다는 반박도 있었다.

“젊은이의 브랜드 열광은 보편적인 일이다. 서구 브랜드의 물건을 구매해 행복을 얻을 수 있다는 꼬드김에 젊은 층이 잘 넘어간다. 나 역시 그랬으니깐. 그러나 미국과 유럽을 보라. 물질적 부의 수준이 높지만 스트레스와 우울증의 정도도 그만큼 높다. 물론 누구나 원하는 대로 살 권리가 있다. 하지만 젊은 층을 유혹하는 그 라이프스타일은 거대 기업의 이사회가 만들어낸 것이다. 브랜드는 돈을 쓰면 쓸수록 더 비참해지는 감옥일 뿐이다.”

―당신의 아내도 상당히 힘들겠다. 괴짜 같은 삶을 어떻게 이해시켰나.

“난 정말 행운아다. 진정 사랑하는 여자가 아내가 됐으니! 그리고 진정한 나의 조력자다. 원래 아내는 명품에 관심이 없었다. 내가 각성하기 전, 환심을 사기 위해 사준 구찌 구두를 놓고 아직도 놀려댄다. 다만 화형식 이후 TV를 못 보는 건 좀 아쉬워한다. 참, 내가 만든 화장수와 치약은 절대 안 쓴다. 그 대신 우리는 집에서 서로를 돌볼 시간이 넘쳐난다. 그 결과가 바로 2세다. TV가 없으면 사랑도 커진다(No TV=More sex). 하하.”

―앞으로도 브랜드 없는 삶은 계속되는 건가.

“그러고 보니 이제 1년쯤 됐다. 사실 처음 공개하는 건데, 치약은 다시 사기로 했다. 하하. 하지만 1만 원짜리 티셔츠의 행복을 맛봤기에 명품 옷을 구입하는 일은 다시는 없을 것이다. 현재의 삶에 만족하며 자긍심을 느낀다. 예전으로 돌아갈 이유가 없다.”

―한국 독자들에게 전하고픈 메시지가 있다면….

“사람들은 누구나 행복해지길 원한다. 우리는 쇼핑으로 허비하기엔 주어진 시간이 많지 않다. 브랜드로부터 벗어나 행복해지길. 참, 아이를 갖지 않는 한국의 젊은 부부가 많단 기사를 읽은 적 있다. 제발∼. 아이가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 줄 깨닫기를. 아들은 내 모든 걸 바꿔 놓았다. 이기심을 버리고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충만감을 느껴보기 바란다.”

정양환 기자 ra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