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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일/트랜드]왜 클럽DJ냐고? 폼나잖아

입력 | 2007-11-02 03:03:00


훈남훈녀에 스타까지 헤드폰 끼고 음반 믹싱

“야, 류승범이다, 류승범!” 지난달 26일 밤 12시 서울 마포구 홍익대 앞 클럽 ‘블루 스피릿’에 배우 류승범이 나타났다. 클럽에서 춤을 추던 사람들은 일제히 카메라를 꺼내 플래시를 터뜨렸다. “놀러 왔나?” “영화 홍보하러 온 거 아냐?” 클럽이 술렁거리는 사이 그는 헤드폰을 목에 걸고 턴테이블과 믹싱 기기가 놓여 있는 DJ 박스 위에 올라갔다.

몽롱한 테크노와 하우스 뮤직을 쉴 새 없이 틀고 있는 그는 이미 ‘배우 류승범’이 아니었다. 담배 한 개비 입에 물고 턴테이블을 만지작거리는 그에게 “멋있다”는 탄성이 여기저기서 흘러나왔다. 클러버들은 1시간 동안 그의 손짓 어깻짓에 마치 준비라도 한 듯 딱딱 맞춰 소리를 지르며 환호했다.

○ 훈남 훈녀의 등용문? ‘클럽 DJ’ 붐

드라마 ‘커피프린스 1호점’에 출연했던 모델 겸 배우 이언에겐 또 다른 닉네임이 있다. 바로 ‘DJ EON’. 지난해부터 서울 강남구 압구정동, 청담동, 홍익대 앞 클럽에서 DJ 활동을 해왔던 그는 올해 모델 에이전시 ‘에스팀’의 파티와 제12회 부산국제영화제 축하파티에서 DJ 실력을 선보였다. “아무리 바빠도 한 달에 5번 정도는 DJ로 활동한다”는 그는 “내가 선곡한 음악으로 수많은 사람들과 함께 소통한다는 것이 매력적”이라고 말했다.

2000년 마돈나는 일렉트로닉 스타일의 신곡 ‘뮤직’을 발표하며 전 세계 클럽 DJ에게 고했다. “아이 워너 댄스 위드 마이 베이비”라고. 이는 내 몸을 흔들게 하는 존재, 바로 클럽 DJ에 대한 예찬론이었다. 25년 전 윤시내가 “그 음악은 제발 틀지 마세요”라 외쳤던 ‘찻집 DJ’와는 다른 존재다. 최근 가수 신해철, 윤상, 양현석, 구준엽을 비롯해 모델 휘황, 디자이너 최범석 등 스타들이 앞 다투어 클럽 DJ에 도전하고 있다.

일반인들도 마찬가지다. 포털사이트 ‘네이버’의 ‘클럽 DJ 인 더 하우스’ 동호회 회원은 1만3000명이 넘으며 ‘클럽 DJ 되는 법’ 문의 글도 각종 게시판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금융회사에 다니는 이지훈(33) 씨는 낮엔 평범한 직장인으로 살아가지만 밤엔 압구정동 클럽에서 아마추어 DJ로 활동하고 있다. “2년 전 아는 친구를 통해 DJ 문화를 접했다”는 이 씨는 “새로운 음악을 클러버들에게 들려준다는 희열에 몸이 피곤한 줄도 모른다”고 말했다.

홍대클럽문화협회 추산에 따르면 홍익대 앞 클럽에서 활동 중인 DJ는 전업 DJ(일명 ‘레지던트 DJ’)와 비전업 DJ(일명 ‘프리 DJ’)를 합쳐 100여 명. 그 수는 점점 늘고 있다. DJ 기술을 가르치는 학원도 생겨났다. ‘DJ 스쿨’의 강사 서영조(27) 씨는 “중학교 1학년생부터 30대 후반 직장인까지 30여 명의 수강생이 믹싱, 스크래치 등을 배우고 있다”고 말했다.

○ DJ가 되면 멋져? 아니 멋지기 위해 DJ 해

클럽 DJ가 되려는 사람들은 “DJ에 대한 일반인들의 인식이 바뀌었다”고 말한다. 1980∼1990년대 나이트클럽 DJ 문화에서도 신철, 한용진 등 스타 DJ들이 배출됐지만 ‘밤 문화’라는 인식이 강했다. 반면 클럽 DJ의 핵심은 ‘음악’이다.

댄스뮤직 위주였던 나이트클럽과 달리 일렉트로닉, 하우스, 테크노 등 유럽의 빠른 템포 음악이나 미국 정통 힙합 등 다양한 장르의 음악을 틀며 마니아 문화를 주도하고 있다. 해외에 가서 직접 희귀 음반을 공수해오는 DJ들이 있는가 하면 아예 직접 음악을 만들어 앨범을 발표하는 DJ들도 있다. 또 패션쇼, 파티 등 스타일리시한 장소에 DJ가 없어서는 안 될 요소로 여겨지며 DJ의 위상이 높아졌다.

최근에는 패션 감각이 뛰어나거나 근육, ‘S라인’ 등을 자랑하는 ‘몸짱’ ‘얼짱’ DJ들이 점차 늘면서 DJ 실력 못지않게 외모가 중시되고 있다. 즉 클럽 DJ는 최신 ‘트렌드’이자 앞서나가는 사람들의 필수코스처럼 여겨지고 있는 것. 클럽 파티 프로덕션인 ‘리스케이’의 손용준 실장은 “클러버들도 멋진 DJ가 있는 클럽으로 몰리는 추세”라며 “최근에는 아예 클럽주들이 잘생기고 몸매 좋은 클러버에게 DJ 오디션을 권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얼짱 DJ로 알려진 김종훈(31) 씨는 “피트니스센터에서 몸매 관리를 하고 정기적으로 피부 마사지도 받는다”면서 “너도나도 DJ가 되는 세상에서 어쩔 수 없는 생존 전략”이라고 말했다.

홍대클럽문화협회의 이승환 기획팀장은 “단순히 ‘DJ가 멋지다’며 따라하는 건 환상이나 거품일 수 있다”고 지적했다. 클럽 DJ의 수당은 경력이나 지명도에 따라 다르지만 1회당 적게는 10만원 미만, 많게는 100만원까지 일정치 않아 취미활동이 아닌 전업 DJ로 활동하기에는 열악한 상황이다.

문화평론가 김헌식 씨는 “DJ 자체가 인기라기보다 홍익대 클럽 문화 속에 존재하는 ‘마니아’ 분위기 자체를 선망하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김범석 기자 bsis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