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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갈피 속의 오늘]1980년 10·27 법난

입력 | 2007-10-27 02:59:00


1980년 10월 27일 새벽 서울 도선사. 주지 혜성 스님은 막 아침 공양을 하고 있었다. 그때 갑자기 한 떼의 군인들이 군화를 신은 채 들이닥쳐 혜성 스님 등을 끌어냈다. 차에 실려 간 곳은 합동수사단 수사 3국. 곧바로 가사장삼은 벗겨지고 죄수용 군복을 입힌 채 고문이 시작됐다.

혜성 스님은 25일의 구금 기간에 구타는 물론 각목으로 오금 치기, 손가락 사이에 볼펜 넣고 죄기 등 가혹행위를 당했다. 그는 “육체적 고문을 당한 것도 힘들었지만 ‘이 새끼, 저 새끼’ 하면서 수시로 뺨을 때린 것이 마음의 멍으로 남아 있다”고 말했다(유응오 씨의 책 ‘10·27 법난의 진실’).

스님에게 씌운 혐의는 17억5000만 원에 이르는 재산 축적과 요정 운영. 하지만 17억5000만 원은 청담고, 도선사, 복지법인의 보육원과 양로원의 시세평가 총액이었다. 요정 운영도 청담고 인수 과정에서 함께 딸려 온 미군클럽을 원주인에게 되돌려 주던 과정에서 ‘혐의’로 둔갑했다. 스님은 결국 무혐의로 풀려났다. 하지만 25일간의 고문으로 탈장 증세가 생겨 장기간 병원 신세를 져야만 했다.

신군부는 당시 불교 정화를 명목으로 전국 조계종 주요 사찰에 들이닥쳐 200여 명의 승려를 연행하는 ‘10·27 법난’을 일으켰다. 연행 승려 중에는 송월주 총무원장과 총무원 간부들, 조계종 19개 본사 주지 등이 포함돼 있었다.

계엄사는 그해 11월 14일 중간 수사 결과를 발표했다. 비리 승려들이 △200억 원의 부정 축재 △주지 직을 2000만 원에 거래 △연예인과 퇴폐행위 △깡패와 규합해 폭력 행사 등을 했다는 것. 10명의 승려와 8명의 일반인이 구속됐고 일부는 삼청교육대에 끌려가기도 했다.

국방위 과거사진상규명위원회는 25일 ‘10·27 법난’에 대해 ‘불교 정화와 스님으로 위장한 불량배 일소’라는 1980년 수사 결과와는 상반된 진상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위원회는 법난의 주요 원인으로 신군부가 전두환 보안사령관의 대통령 추대 지지를 거부한 조계종에 대해 반감을 갖고 있었다는 점을 지적했다. 또 전두환 전 대통령이 1989년 5공 청문회에서 10·27 법난을 잘 모른다고 답변한 것이 거짓이었다는 자료도 공개됐다.

10·27 법난의 최고 책임자였던 전 전 대통령은 퇴임 이후 설악산 백담사에서 한동안 은둔했다. 자신이 탄압했던 불교에 몸을 의탁한 것이다.

그는 백담사에 은둔하며 100일 참회기도를 올렸다. ‘10·27 법난’에 대한 업(業)도 참회했을까.

서정보 기자 suhcho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