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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 학교에 마을도서관을]충북 상신초교 마을도서관

입력 | 2007-10-24 03:03:00

거의 매일 상신초교 도서관에 온다는 정치해 학교운영위원장(왼쪽에서 두 번째) 가족. 막내 혜인 양(오른쪽)과 부인 김숙자 씨는 마냥 즐거운 반면 큰딸 혜진(가운데)과 둘째 연주 양은 사뭇 진지했다. 중학생인 혜진 양이나 아직 학교에 입학하지 않은 혜인 양에게 상신초교 도서관은 ‘온 가족이 나들이 오는 놀이터’다. 진천=정양환 기자


《“거참, 위원장님. 사진 찍는데 표정 푸세요.”(조명옥 교장·56)

“교장선생님이나 좀 웃으세요. 이리 딱딱해서야….”(정치해 학교운영위원장·41)

사진 찍기 참 힘들었다. “촌사람이라 카메라 앞에 서 봤어야지….” 책 읽는 포즈도 심각하기 그지없다. 나중에는 우스갯소리로 “자세가 안나온다”며 서로 탓하기도 한다. 하지만 조 교장과 정 위원장 사이는 충북 진천군 이월면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다. 조 교장이 신월리 상신초등학교에 부임한 이래 정 위원장은 언제나 뜻을 함께했다. “말은 저렇게 해도 제일 믿고 신뢰하는 사이”(고제영 교감)라고 한다. 두 사람의 뜻이 결실을 보고 있다. ‘방과 후 학교 활성화 시범학교’로 지정됐고 리모델링으로 새롭게 태어난 상신초교 학교마을도서관은 “전국에서 가장 잘 운영되는 마을도서관”(변현주 ‘작은 도서관 만드는 사람들’ 사무국장)이다. 이 성공은 조 교장과 정 위원장의 ‘의리’가 빚어낸 드라마였다.》

○ 교장 선생님과 학부모의 뚝심

“제가 배운 게 없어 애들에겐 기회를 많이 주고 싶었어요. 그렇다고 도시처럼 학원이다 뭐다 들일 돈도 없고…. 교장선생님의 얘기를 듣곤 이거다 싶었죠. 어찌나 솔선수범하시는지. 다 교장 선생님이 한 일이에요. 저야 뭐, 응원만 한 거고.”(정 위원장)

조 교장도 정 위원장이 전화 받으러 나가자 칭찬 일색이다. “학교 사업은 학부모의 도움이 핵심입니다. 학부모들이 안 받아 주면 불가능해요. 그런데 이 양반(정 위원장), 뭐든 하겠다고 주도를 하더라고요. 젊은 사람이 자기 살기도 바쁠 텐데…. 고마웠죠.”

상신초교 학교마을도서관이 자리를 잡은 것은 두 사람의 뚝심 덕분이었다. 처음에는 방과 후 학교, 도서관 활성화란 목표를 부정적으로 보는 분위기도 있었다. 두 사람은 교육청과 총동문회를 일일이 쫓아다니며 설득했다. 충북도교육청의 조준애(54) 장학사는 “어떨 때는 번갈아 가며 지겨울 정도로 찾아오셨다”며 “그 정도 의지라면 뭘 맡겨도 될 것 같았다”고 말했다.

이 도서관은 지난해 11월 ‘작은 도서관 만드는 사람들’(대표 김수연)의 지원에 힘입어 재개관했다.

○ 도서관은 책이 아니라 사람이 있는 곳

학교마을도서관은 세우는 것으로 끝나는 게 아니다. 어렵사리 문을 열었다가 학부모와 아이들의 관심을 끌지 못하는 곳도 있다. 변 국장은 “관리 인원 확보와 교사와 학부모의 열정이 관건”이라고 말했다.

조 교장과 정 위원장은 그러한 문제를 잘 알고 있었다. 신월리는 40가구 남짓한 동네. 교사들과 학교운영위원회, 자모회 모두가 참석해야 운영할 수 있다고 설득했다. 교사들이 당번을 짜 도서관을 지켰다. 수업 때문에 비는 시간은 학부모들이 채웠다. 신영옥(46) 독서지도교사는 “열성적인 두 분 덕에 교사와 다른 학부모들도 감화를 받았다”고 말했다.

정 위원장은 부인 김숙자(36) 씨와 세 딸과 함께 거의 매일 도서관으로 출근했다. 어린이회장인 둘째 딸 연주를 비롯해 중학생 큰딸 혜진(12) 양과 막내딸(6) 혜인 양도 함께 나섰다.

“도서관은 책이 있는 곳이 아닙니다. 책과 ‘사람’이 있는 곳이죠. 집에는 일부러 인터넷도 안 깔았어요. 혜진이한테 ‘인터넷이랑 숙제랑 모두 도서관 가서 해라’고 했습니다. 막내보고도 시끄럽게 굴어도 좋으니 도서관에서 놀라고 했죠.”

그러다 보니 주민들도 변하기 시작했다. 도서관은 아이들이 즐겨 찾는 놀이터가 됐다. 어른들도 저녁을 먹은 뒤 시간을 내 들렀다. 읍내로 학교를 다니는 중고교생들도 PC방 대신 도서관을 찾았다. 요즘 마을에서는 집에 없으면 “도서관 갔나?”는 말이 저절로 나온다.

요즘 조 교장과 정 위원장은 또 다른 꿈을 꾼다. 상신 학교마을도서관에서 이룬 행복을 나눠 주고 싶다는 취지다. 도서관 이름으로 인근 보육원이나 소외 계층에게 책을 전하는 일도 시작했다.

이 정도면 뿌듯하지 않을까. 그런데 두 사람, 대답이 “뭐, 별 건 아니고…”로 말을 멈춘다.

진천=정양환 기자 ra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