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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김주영의 그림 읽기]물구나무서기로 보이는 세상

입력 | 2007-10-20 03:09:00


어떤 출판사의 경영주는 직원이 만든 잡지의 완성본을 받아 들면, 맨 뒤쪽 페이지에서부터 역순으로 읽는 버릇이 있었습니다. 뒤쪽부터의 뒤적거림은, 편집자의 기량이 책 전체에 밀도 있게 분포돼 있는지를 살펴보려는 의도겠지요. 이를테면 편집자의 균형감각과 긴장감이 잡지의 마지막 페이지까지 소홀함이 없이 유지됐는지 점검해 보려는 것입니다. 제게도 거꾸로 된 세상을 발견했던 최초의 경험이 있습니다.

바로 시골 초등학교 시절, 철봉에 거꾸로 매달려서 바라보았던 세상입니다. 우연하게 얻어 낸 그 매달림의 경험은, 미처 깨닫지 못했던 또 다른 세상이 엄연히 존재한다는 사실을 가르쳐 주었습니다. 바지 주머니에 들어 있던 접이칼이나 몽당연필을 비롯한 잡동사니가 죄다 흘러나와 창피했지만, 착시가 아닌데도 하늘에 거꾸로 떠 있는 교실과 교정의 나무와 꽃밭을 바라보는 일은 기이하면서도 혼란스러웠습니다. 사물의 본질이 왜곡되게 보이는지, 그 사물이 지닌 물리적 정체성을 의심해도 좋은지, 산골에 갇혀 살고 있어 열등했었던 아이에겐 정녕 혼란스러웠습니다. 그렇습니다. 종이컵을 식탁 위에 놓아 두고 옆에서 보면 사다리꼴이지만 위에서 보면 동그란 원형입니다. 바다에서 보면 육지도 섬으로 보입니다.

어린 시절, 철봉대에 물구나무서기로 매달려서 얻어 낸 작은 경험은 보이는 것만이 세상의 전부가 아니라 보이지 않는 세상도 엄연히 존재한다는 점을 가르쳐 주었습니다. 그래야만 다른 사람이 가질 수 없는 나만의 독특한 세상 보기의 통찰력을 소유할 수 있다고 봅니다.

그 길을 찾아낼 수 있는 길은 바로 꿈을 가지는 것입니다. 꿈에 대한 독해력을 가진 사람만이 보이지 않는 세상을 볼 수 있는 눈을 가진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이 꿈을 가지게 되면 어떤 사람을 막론하고 소름 끼칠 정도의 암울한 시련과 질곡을 겪어야 하겠지요. 그것으로 좌절을 겪고 처량한 조난자 신세가 될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고 냉큼 꿈을 버릴 수는 없습니다. 꿈속에는 그처럼 난폭한 현실을 슬기롭게 견뎌 낼 수 있는 에너지가 함께 있기 때문입니다. 꿈을 가진 이상 우리의 영혼은 잠들지 않겠지요. 설혹 그 삶이 무례한 변덕과 억압으로 얽혀 있다 하더라도 꿈이 있기에 좌절을 뛰어넘는 생동감과 기백을 얻게 된다는 점을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