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트렌드 생활정보 International edition 매체

검찰 관계자 “동아가 협조해야 다른 언론사 수사 가능”

입력 | 2007-07-28 03:03:00

기자와 검찰 심야 대치서울중앙지검 공안1부 소속 검사와 수사관들(오른쪽)이 서울 종로구 세종로 동아일보 본사 7층에 있는 전산실 서버에 대한 압수수색을 시도하기 위해 전산실로 들어가려 하자 기자들이 앞을 막아서고 있다. 변영욱 기자


■ 사건의 전말

서울중앙지검 공안1부가 26, 27일 서울 종로구 세종로 동아일보 본사 7층 전산실의 중앙서버에 보관된 신동아 허만섭 최호열 기자의 e메일 계정에 대한 압수수색 영장 집행에 나섰으나 기자들의 반발로 무산됐다.

검찰은 중앙정보부가 수사해 당시 박정희 대통령에게 보고했다는 고 최태민 목사 관련 보고서(이하 ‘최태민 보고서’)의 유출 경위에 대해 한나라당이 12일 수사 의뢰했기 때문에 신동아의 자료 입수 경로에 대한 수사가 불가피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취재원 보호 위해 e메일만 거부, 홈페이지 접속 기록은 제공=검찰은 26일 오후 5시경 동아일보 세종로 사옥으로 검사 1명과 수사관 5명을 보내 신동아 기자 2명의 e메일 계정 서버에 대한 압수수색 영장을 제시했다.

검찰은 올해 4월 21일부터 최근까지 두 기자가 주고받은 모든 e메일(2900여 건)에 관한 자료 일체를 넘겨 달라고 요구했다.

검찰은 또 6월 중순 이후 동아닷컴 홈페이지에 게시된 신동아 ‘최태민 보고서’ 기사에 접속한 로그인 기록을 요구했다. 본보는 로그인 기록은 취재원 보호와 무관하다는 판단 아래 검찰 측에 자료를 넘겼다.

그러나 본보 기자들은 취재기자의 e메일 제출 요구는 “취재원 보호원칙을 명백히 침해하는 것이어서 수용할 수 없다”는 견해를 밝혔고, 검찰은 낮 시간의 압수수색 영장 집행시한인 일몰시간(오후 7시 40분경)에 철수했다.

본보는 27일 취재원 보호 원칙을 깨지 않는 선에서 두 기자의 e메일 관련 자료를 임의제출할 수 있다는 뜻을 검찰 측에 전달하고 협의에 들어갔다. 그러나 검찰은 이날 오후 6시 20분경 검사 2명과 수사관 10명을 보내 2차 압수수색에 나섰다.

본보 기자 60여 명은 곧바로 전산실 입구에서 “취재 기자의 e메일 압수는 명백한 언론 자유 침해이며 취재원 보호는 기자가 지켜야 할 생명과도 같은 것”이라며 항의했다.

검찰 측은 “영장 집행을 방해하면 공무집행 방해로 처벌받을 수도 있다”고 고지했고, 수사관들은 진입을 시도해 5분여간 양측 간에 몸싸움이 벌어졌다.

이 과정에서 검찰은 서울 종로경찰서에 경찰력 지원을 요청해 오후 7시 20분경 전경 1개 중대 100여 명이 본사 사옥 정문 앞에 출동했다. 경찰은 20여 분 뒤 철수했다. 검찰 측과 기자들 간의 몸싸움은 이후 3, 4차례 더 이어졌다.

본보와 검찰 측은 오후 7시 10분경부터 다시 관련 자료의 임의제출 문제를 협의했으나 제출할 자료의 범위와 제출방식에 대한 이견을 좁히지 못했다. 검찰 측은 이날 오후 9시 30분경 수사관 일부가 철수한 데 이어 이날 밤 12시경 모두 돌아갔다.

▽검찰, 기자 통화기록과 e메일 추적=검찰은 ‘최태민 보고서’의 진위와 유출 경로 등을 한 달 넘게 수사해 왔다. 이는 지난달 한나라당 당원 김해호(58·구속) 씨가 이 보고서 내용 중 최 목사의 재산형성과정에 대해 의혹을 제기하자 박근혜 전 대표 캠프 측과 최 전 목사의 딸이 명예훼손혐의 등으로 고소한 데 따른 것.

검찰은 신동아 6, 7월호에 실린 이 보고서의 원본을 넘겨 달라고 신동아 측에 요구했다. 당시 검찰은 “유출 경위는 수사하지 않겠다. 보고서를 수사기록에 포함시키지 않고 참고자료로 활용하겠다”는 조건을 제시했다. 그러나 허 기자는 보고서 제출을 거부했다.

이달 12일 한나라당이 ‘최태민 보고서’ 유출 경위에 대해 수사를 의뢰하면서 검찰은 신동아 보도 경위에 대해 본격 조사에 나섰다.

검찰은 신동아 기자 2명과 국가정보원 직원 P 씨 등의 최근 3, 4개월 치 휴대전화 통화기록을 조회한 것으로 알려졌다. 보고서를 게시한 동아닷컴과 ‘해찬광장’ 홈페이지 등에서 누가 보고서를 내려받았는지 확인하기 위해 해당 홈페이지의 로그인 기록도 확보해 분석했다.

검찰은 이 같은 자료를 근거로 법원에서 압수수색 영장을 발부받았다. 국정원은 P 씨가 국정원 내에 보관돼 있는 옛 중앙정보부의 ‘최태민 보고서’를 언론계나 정치권에 유출했는지에 대해 자체 감찰조사를 벌였다. 그러나 현재까지 P 씨의 연루사실은 확인되지 않고 있으며 신동아 기자에게 문건을 넘긴 적도 없다고 밝히고 있다.

▽언론사 압수수색의 전초전?=검찰은 ‘최태민 보고서’가 시중에 여러 가지 형태로 떠돌아 그 가운데 중앙정보부가 작성한 보고서가 어떤 것인지 확인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하고 있다.

수사팀의 한 관계자는 “정보기관의 자료를 대선을 앞두고 외부로 유출했다면 수사를 하지 않을 수 없다. 주민등록초본 유출과 관련해 수사를 받은 중앙일보 전현직 기자와의 형평성 문제도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번 사안은 취재보도와 무관한 행위가 아니라 제보를 받고 관련자를 만나 확인 취재해 보도한 것으로서 이를 문제 삼아 검찰이 압수수색에 나선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다.

이와 관련해 검찰의 한 고위관계자는 “동아일보가 (압수수색)협조를 해 줘야 다른 (언론사의) 수사도 가능하다”고 말하기도 했다.

정원수 기자 needjung@donga.com

이재명 기자 egija@donga.com

■ 신동아가 밝힌 압수수색 문제점

《월간 신동아는 27일 검찰의 신동아 기자 e메일 압수수색 시도에 대해 언론자유를 침해하는 공권력 남용이라고 밝혔다. 다음은 신동아가 지적한 검찰의 압수수색 시도의 문제점 요지.》

① 신동아 기자들의 e메일 계정에 대한 검찰의 압수수색 시도는 명백한 언론자유 침해 행위이다. 기자는 국민의 알 권리를 충족시키기 위해 다각적인 취재활동을 벌이는 직업적 특수성을 사회적으로 인정받고 있다. 취재원 보호는 언론의 생명과도 같은 것이며 그 자체로 매우 공익적이다. 검찰이 신동아 기자들의 모든 e메일 계정에 대해 압수수색을 시도하는 것은 기자에게 목숨과도 같은 취재원 보호 수칙을 위협하는 행위다.

② 압수수색 대상인 신동아 기자들은 범죄 혐의를 받고 있는 피의자가 아니다. 압수수색영장에도 나와 있듯이 이들은 ‘피내사자의 관련인’일 뿐이며, 실제로는 피내사자와의 관련성도 분명하지 않다. 게다가 신동아 보도에 대한 고소·고발도 없었고, 보도 과정에서 법적 윤리적 문제도 제기되지 않은 상황에서 검찰이 취재원을 밝혀내기 위해 언론사 압수수색까지 하려는 것은 명백한 공권력 남용이다.

③ 기자들의 e메일 계정을 열람하겠다는 것은 취재수첩과 일기장, 우편함을 뒤지고 통화를 감청하는 행위와 다를 바 없다. 그렇게 한다면 검찰의 수사 대상과 무관한 취재원과 취재자료, 각종 정보는 물론 기자의 사생활까지 고스란히 노출된다. 이는 헌법이 보장하는 통신비밀과 사생활 보호의 기본권을 명백히 침해하는 행위다.

④ 신동아는 정당한 법 절차에 따른 검찰의 공무집행을 방해할 생각은 없다. 신동아의 취재 및 보도 과정에 법적 윤리적으로 하등 문제될 소지가 없기에 검찰의 합리적인 수사에 대해서는 최대한 협조할 것이다. 그러나 단지 수사에 필요하다는 이유로 언론사의 전산 서버를 뒤져 보호받아야 할 취재원과 기자의 사생활을 무분별하게 파헤치는 것은 심각한 인권 및 언론자유 침해라는 점을 거듭 밝힌다.

트랜드뉴스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