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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여름 밤의 전율, 추리소설 20선]용의자 X의 헌신

입력 | 2007-07-11 03:02:00


추리소설을 읽는 재미는 무엇일까? 추리소설은 범죄가 해결되는 과정에 독자를 초대한다. 범인이 누구인지, 왜 범죄를 저질렀는지 추리하는 가운데 독자는 적극적으로 사건 현장에 개입한다.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자 에르네스트 만델은 추리소설의 가장 큰 효용은 공포를 이기는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마음대로 조율할 수 없는 시간과 공간의 위협, 추리소설은 이 오래된 공포를 잊게 해 준다. 2006년 나오키상을 수상한 히가시노 게이고의 소설 ‘용의자 X의 헌신’ 역시 그렇다.

주목해야 할 것은 히가시노의 소설이 우리가 알고 있는 추리 소설의 문법을 위반하면서 시작한다는 사실이다. 위반은 첫 장을 펼치는 순간부터 시작된다. 이혼녀 야스코는 자신을 괴롭히는 전 남편 도미가시를 우발적으로 죽이게 된다. 가장 마지막에 등장해야 할 범인과 살해 동기가 앞부분에 도치되어 있는 것이다. 이 책을 읽는 재미는 누가 범인인가를 밝히는 과정이 아니다. “왜?”라는 질문 역시 폐기되어야 한다. 야스코는 우발적으로 전 남편을 죽였고 이시가미는 그녀를 사랑하기 때문에 범죄를 뒤집어쓴다.

그렇다면 질문의 방식은 어떻게 바뀌어야 하는 것일까? 질문은 바로 ‘어떻게’로 시작되어야 한다. 이 책은 주도면밀한 추리들이 직조되고 허물어지는 과정, 그 자체에 추리의 핵심을 두고 있기 때문이다.

저자 히가시노는 중요한 것은 해답이 아니라 질문의 방식임을 주지시킨다. 수학자 이시가미와 물리학자 유가와의 대결이 압축된 지점 역시 이곳이다. 수학에서 가장 난제로 꼽히는 ‘P≠NP’라는 반복되는 공식은 전환의 본질을 암시한다. 기하학으로 푸느냐, 수학으로 접근하느냐에 따라 해답은 완전히 달라진다. 중요한 것은 사건의 결과가 아니라 원인과 과정인 셈이다.

결국 사건의 전모는 야스코를 사모해 왔던 이시가미의 헌신으로 밝혀진다. 문제는 이시가미의 범죄가 야스코를 보호하기 위해 조작된 위장 살해라는 사실이다. 유가와도 수사진도 이 사실을 알고 있지만 규명해 낼 수 없다. 자백을 받아들이는 것도 실패이며 그것을 부정하는 것 역시 실패이다. 히가시노는 이시가미라는 가상의 인물을 통해 어떤 방식으로든 증명 불가능한 완벽한 가설을 축조하는 데 성공한다.

추리소설이 숨겨야 할 마지막 패를 가장 먼저 내려놓음으로써 작가는 케케묵은 장르적 관습을 거절한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범죄소설이라기보다 논리적 대결 과정에 가까워 보인다. 완벽한 논리의 알리바이의 허점을 찾아내는 과정은 끊임없는 질문을 만들어 낸다. 유가와와 이시가미의 문답이 수학적 가설과 물리학적 해답의 대결로 받아들여지는 것도 이 때문이다. 특별하면서도 다른 추리 소설 ‘용의자 X의 헌신’이 주는 재미는 바로 여기에 있다.

강유정 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