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분 후의 삶/권기태 지음/276쪽·9800원·랜덤하우스코리아
사람은 죽는다. 이 벗어날 수 없는 한계가 종교를 만든다. 철학을 만든다. 피할 수 없는 죽음, 한 줌 흙으로 사라진다는 공포는 남루한 삶을 비관하는 허무주의를 만든다.
그러나 여기 죽음의 순간에 간절히 삶을 원했고 다시 찾은 삶의 안뜰에서 반짝이는 희망과 사랑, 용서를 깨달아 생(生)의 의지를 다지는 사람들이 있다.
“나는 방금 살아난 것이다.”
이 책은 갑자기 닥친 죽음의 순간을 극복하고 삶으로 초대받은 12명의 기록이다. 그들은 실습 항해사, 보험 세일즈맨, 등반가같이 평범한 사람이다. 그들은 생의 극한을 경험하는 것 말고 다른 방법으론 결코 깨달을 수 없는 삶의 환희를 저자에게 털어놓았다.
그래서 이 책은 논픽션이다. 그러나 장편 ‘파라다이스 가든’으로 ‘오늘의 작가상’을 받은 저자는 12명 각각의 화자가 되어 이야기를 단편소설처럼 풀어 놓았다. 기자 출신 작가답게 문장엔 군더더기가 없지만 절망과 사력, 희망을 오가는 주인공들의 내면을 농밀하게 표현했다.
주인공들은 죽음에 직면했던 당시를 또렷이 기억한다. 집채만 한 파도에 휩쓸려 인도양 한가운데 떨어졌던 임강룡 씨의 머릿속엔 자신을 구해 준 바다거북의 굵은 목덜미 주름까지 남아 있다. 저자는 그런 기억의 틈을 비집고 또 비집고 들어갔다. 덕분에 주인공들 내면의 세계 깊이 빨려 들어가는 느낌이다. 이야기 속 1분이 실제 1분처럼 느껴진다. ‘주인공 옆에 있는 듯 함께’ 죽음에서 빠져나올 땐 안도감마저 든다.
이를테면 이런 묘사들에서 그렇다. 실습 항해사로 유조선을 탔다가 바다 한가운데서 석유탱크 폭발로 배가 침몰해 목숨을 잃을 뻔한 김학실 씨 얘기다. “배가 안 오고 있다고 해야 맞았다. 하지만 그 말로 선장님과 함께 살고 싶다는 내 바람과 진정한 의도는 끝이 난다. 몇 분을 더 살아도 비관하며 살 수는 없었다. 우리 삶에 꽃이 필요하다면 성에에 그려 내기라도 해야 했다.”
사지에서 돌아온 이들에겐 공통점이 있다. 죽음의 순간 앞에서도 마지막까지 몸부림을 쳤다는 것. 희망이 자신을 설득하는 거짓말일지라도 이 거짓말이 현실이 되도록 사력을 다했다. 생텍쥐페리가 사막에 추락했을 때 슬퍼할 아내를 생각하며 견뎠듯이 가족을 생각하며 외쳤다. “아, 나 죽으면 안 돼!”
이야기마다 갑자기 닥쳐 온 위험과 절망, 사투, 환희가 교차된다. 이 생사의 갈림길엔 여지없이 죽음을 삶으로 이끄는 수호천사가 등장한다. 이는 조력자이기도 하지만 본질적으로는 생으로 가겠다는 본인의 의지였다.
일과 사람에 치이고 사소한 불행이 쌓이고 쌓여 비루한 삶에 지친 이들에게 이 책을 권한다.
윤완준 기자 zeitu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