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일 밤 일본 도쿄문화회관에서 열린 오페라 ‘천생연분’ 공연을 마친 뒤 지휘자 정치용 씨(가운데 검은 양복)를 비롯한 국립오페라단원들이 커튼콜에 답하고 있다. 사진 제공 국립오페라단
“이제 당신과 나는 종이 아닙니다. 서로의 주인입니다. 새로운 세상의 주인입니다.”
27일 밤 일본 도쿄(東京) 우에노(上野) 공원 안에 있는 도쿄문화회관. 국립오페라단의 창작오페라 ‘천생연분’에서 주인공 서향(김판서 댁 딸)과 서동(맹진사 댁 종)이 신분 차이를 뛰어넘어 서로 사랑을 고백하는 이중창을 부르자 객석에서는 ‘브라보’가 터져 나왔다.
60여 년 전통의 도쿄문화회관은 라스칼라, 로열오페라, 볼쇼이극장 등 세계적인 오페라 단체가 초청 공연을 펼쳤던 유서 깊은 무대. 지난해 3월 독일 프랑크푸르트 오페라극장에서 초연됐던 ‘천생연분’은 이곳에서도 ‘오페라 한류’의 뜨거운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천생연분은 영화나 연극, 뮤지컬로도 잘 알려진 ‘맹진사댁 셋째딸’을 오페라로 창작한 작품. 양정웅 연출과 이상우 대본, 임준희 작곡으로 새롭게 태어난 이 오페라는 마치 한 폭의 현대미술 작품을 보는 듯 심플한 무대와 신분을 넘어선 사랑, 자유의 소중함이라는 보편적 주제로 외국인의 입맛까지 겨냥했다.
이 작품이 과연 일본인의 마음을 열 수 있을까. 소극적이기로 유명한 일본 관객들은 맹 진사가 해학적으로 노래하는 ‘초시 초시 줄초시’ 장면까지도 좀처럼 웃지 않았다. 1막 후반기쯤 몽완이 춤추는 기생과 술을 마시는 장면에서 비로소 낮은 탄성과 박수가 나왔다.
2막 들어서 서향과 이쁜이, 서동이 번갈아 부르는 이중창에서는 노래가 끝날 때마다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산케이신문 나가시마 다카히로(永島貴弘) 상무는 “한국적 이미지로 가득 찬 오페라지만 일본인인 나도 바로 공감이 돼 감명 받았다”고 말했다.
이날 하타 쓰토무(羽田孜) 전 총리의 부인 하타 야스코(羽田綏子) 일한예술교류회장을 비롯해 일본 정재계 인사도 다수 관람했다. 총 2200석의 객석이 4층까지 꽉 찼으며 95% 이상이 일본 관객이었다.
사모야카와 교스케(下八川共祐) 후지하라 가극단장은 “천생연분은 대본과 음악이 오페라를 잘 아는 분들이 만든 것 같고 미니멀한 무대와 성악가 및 합창단의 가창력 수준이 매우 높았다”고 말했다.
작곡가인 마쓰시타 사오(松下功) 도쿄예대 교수는 “피리와 태평소 등 한국의 전통악기와 서양 오케스트라의 조화가 정말 다이내믹했다”며 “일본에서는 창작오페라가 인기를 얻기 어려운데 한국은 굉장한 프로젝트를 만들어 내고 있다”며 부러워했다.
도쿄=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