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엄마가 죽었다.’
소설 ‘이방인’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엄마의 부음 통지서를 받은 주인공 뫼르소. 그는 아주 냉소적인 자세로 엄마의 죽음을 맞이합니다. 휴가 내주기를 꺼리는 사장에게 “그건 제 탓이 아닙니다”라고 나직이 말하고는 엄마의 시신이 있는 양로원을 향해 버스에 오릅니다. 뜨거운 태양 아래 장례식을 치르면서 그는 한 방울의 눈물도 흘리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바로 다음 날 바다로 수영을 하러 갑니다. 바다에서 그는 예전부터 마음에 두었던 여인을 만나지요. 그리고 그 여인과 저녁을 먹고 희극 관람을 한 후 밤을 함께 지냅니다. 여러분은 뫼르소의 행동을 어떻게 생각하나요? 비도덕적이라고 생각하나요? 아니면 단지 슬픔을 극복하려는 반어적 행위일 거라고 생각하나요?
뫼르소는 그 누구도 어머니의 죽음을 슬퍼할 권리가 없다고 여겼습니다. 심지어 그녀의 아들인 자신마저도 말이지요. 어떻게 그렇게 생각할 수 있을까 궁금한 친구들은 ‘이방인’을 찾아보아야겠지요?
자, 이제 뫼르소는 어떻게 될까요?
‘이번에는 아랍 사람이, 몸을 일으키지는 않고 단도를 뽑아서 태양빛에 비추며 나에게로 겨누었다. 빛이 강철 위에서 반사하자, 번쩍거리는 길쭉한 칼날이 되어 나의 이마를 쑤시는 것 같았다.(중략) 다만 이마 위에 울리는 태양의 심벌즈 소리와, 단도로부터 여전히 내 앞으로 뻗어 나오는 눈부신 빛의 칼날을 느낄 수 있을 뿐이었다. 그 뜨거운 칼날은 속눈썹을 쑤시고 아픈 두 눈을 파헤치는 것이었다. 모든 것이 기우뚱한 것은 바로 그때였다. (중략) 나는 온몸이 긴장하여 손으로 피스톨을 힘 있게 그러쥐었다. 방아쇠가 당겨졌고, 나는 권총 자루의 매끈한 배를 만졌다.(중략) 나는 한낮의 균형과 내가 행복을 느끼고 있던 바닷가의 예외적인 침묵을 깨뜨려버렸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때 나는 그 굳어진 몸뚱이에 다시 네 방을 쏘았다. 총탄은 깊이, 보이지도 않게 들어박혔다.’
뫼르소는 이렇게 살인자가 되었습니다. 판사가 왜 살인을 저질렀느냐고 묻자, 그는 태양 때문이었다고 말합니다. 재판장 안은 웃음바다가 됩니다. 하지만 뫼르소의 말은 사실입니다. 그는 태양 때문에 살인을 저지르게 된 것입니다. 그러니까 진정한 살인자는 태양이라는 말이지요. 어떤 이는 햇빛 때문에 살인을 저지를 수도 있는가 봅니다. 여러분은 태양 때문에 살인을 저지른 뫼르소를 어떻게 생각하나요?
그의 재판 과정을 지켜보던 많은 사람은 뫼르소에 대해 알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자신의 어머니가 죽었음에도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은 냉혈한이라면 누구든지 죽일 수 있다고만 여깁니다. 그는 끝내 사형을 언도 받고 맙니다.
뫼르소는 이방인입니다. 아니 이방인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삶을 바라보는 시선이, 삶을 대하는 태도가 남들과 달랐으니까요. 하지만 뫼르소가 이방인이라는 사실은 태양 때문에 살인을 저질렀다는 사건으로 인해 세상에 드러납니다. 평소 따뜻하고, 성실한 젊은이라는 평도 들었지만 그런 사실은 몽땅 잊혀지고 맙니다. 그렇다면 그를 이방인으로 만든 건 태양일까요?
‘이방인’에서 태양이 의미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우리가 알고 있는 ‘태양’일까요? 아니면 다른 의미가 있는 걸까요? 잘 한 번 생각해 보기 바랍니다. 태양의 의미를요.
사형 집행 전 자신을 회개시키기 위해 찾아온 목사를 향해 뫼르소는 그동안 생각해 왔던 모든 것을 폭언으로 토해냅니다. 그리고 난 후 안정을 찾지요. 심지어 그는 예전에도 행복했고 죽음을 맞이하는 순간까지도 행복하다고 느낍니다. 다시 살아볼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까지 합니다. 죽음이 손끝까지 와 닿는 순간인데 말입니다.
태양 때문에 살인자가 된 뫼르소. 죽음 직전에야 비로소 자기 삶에 대해 생각하게 된 뫼르소. 여러분은 뫼르소를 어떻게 생각하나요? 앞뒤가 안 맞는 정신이상자로 볼 건가요, 아니면 너무도 낯선 이방인이라고 생각할 건가요? 태양이 참 뜨겁습니다.
이승은 학림 필로소피 논술전문 강사